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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교회라는 가면을 쓴 제왕들
작성자 임광선 작성일 18-01-06 11:53 조회 482

은혜로운 교회라는 가면을 쓴 제왕들

목사 중심의 교회는 회칠한 무덤이

                                                               당당뉴스 2017.12.31 임종석

 

찬양과 기도가 뜨겁고 예배가 뜨거워야 은혜로운 교회인가

 

은혜로운 교회라고 하면 뜨거운 찬양, 뜨거운 기도, 뜨거운 예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물결 하나 없는 호수처럼 조용한 교회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런 교회, 또 어떤 사람은 저런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라고 여길 것이다. 저마다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이 생각 또한 다른 것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뜨거운 찬양과 기도와 예배의 그 ‘뜨거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뜨거운 찬양’의 그것이라면 활기차고 열정적이며 큰 목소리로 부르는 찬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뜨거운 기도’란 어떠한 것일까. 두 손을 높이 들고 흔들기도 하며 큰소리로 하는 기도일까. 거기에다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울부짖으면 더 은혜로운 기도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의 기도는 뜨겁다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느 쪽인가 하면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한 한나의 기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도를 주로 집에서 한다. 서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콧구멍만한 방의 벽면 하나에 닿게 두툼한 솜 요대기를 둘로 접어 깔고, 그 위에 커다란 베개를 벽에 붙여 세워 놓는데, 그것이 필자의 기도 자리요 기도의 골방이다.

 

여기에서 기도할 때면 베개에 기대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가장 편한 자세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리가 뻐근해지면 쭉 펴고 한다. 이에 혹자는 ‘하나님 앞에서 불경스럽게 다리를 뻗다니’ 하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육신의 다리는 뻗었지만 마음의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때의 기도는 입술조차도 딸싹이지 않고 속으로 한다. 거추장스러워 아예 언어를 빼 버리고 내용을 형상으로 그리며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벅차오르는 가슴을 손으로 지그시 누르기도 하고, 경건함이 마음을 사로잡으면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에 모여 기도할 때면 손을 가슴에 얹거나 두 손을 모으거나 하는 일을 절제한다. 하나님 외에 누구도 보는 이가 없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떤가. 필자와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는 기도가 이와 같으니 뜨겁다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뜨겁지 않으니 은혜롭지도 못한 게 아닌가.

 

필자의 교회는 예배 또한 뜨겁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다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리고, 몇 번인가 ‘아멘’ 소리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릴 뿐이다. 교인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 미동도 하지 않으니 졸고 있는지 어떤지 모를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니다. 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설교자를 응시하며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 모습이 앞에서 보지 않고도 그대로 느껴진다.

 

어떤가.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주어도 뜨거운 예배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뜨겁지 않다 해서 이런 예배를 어느 누가 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외양은 뜨겁지 않게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자기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지 모를 일 아닌가. 아니 필자는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멘’ 또한 입으로는 하지 않지만 속으로 온몸에 사무치도록 하고 있음을 안다. 필자도 그러니까.

 

 

누가 목사만이 하나님의 종이라 했는가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물결 하나 없는 호수처럼 조용해 은혜로운 교회!’ 어떤가. 정말 은혜로운 교회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아니다. 아주, 아주 잘못된 교회이다.

 

사람은 그 누구라 해도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신령한 목사님이라 해도, 설혹 성인의 반열에 든 사람이라 해도 안 된다. “몸인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목사가 중심이 되어 하나가 된다면 큰일 날 일이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목사가 중심이 되었다면 그건 이미 교회가 아니다.

 

8,15 해방 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국론이 분열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며 단결을 호소하는 명언을 남겼다.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에 유래한 것이지만 명언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이 명언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뭉치되 다른 사람은 안 되고 자기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데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혹자는 말할 것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니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 안 될 건 없지 않냐 고. 그러나 누가 목사만이 하나님의 종이라 했는가. 성경은 믿는 사람 모두를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 강조한다. ‘너희’가 그렇다 했는데, 여기에서의 ‘너희’는 목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이다.

 

목사 누구도 이를 아니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말로는 교인들을 보고 ‘나도 여러분도 다 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지만, 실제를 보면 왕 같은 건 목사 자신뿐이고 교인들은 모두가 그 백성에 불과하다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목사 누구도 ‘목사가 교인들보다 위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사와 교인들이 정말로 평등한 교회가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있는가.

 

장거리를 이동하는 승합차에 담임목사와 운전을 하는 부목이나 전도사, 그리고 노인을 포함한 교인들이 탔다고 하자. 그럴 경우 담임목사가 운전석 옆 자리를 나이 많은 교인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뒤의 불편한 자리에 않는다면 그 교회는 평등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 그렇게 하는 목사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교회에서 성경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은 목사일 것이다. 예외도 없진 않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말씀이 지식에 그치고 만다면 그것은 죄이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약4:17)

 

하나님의 외아들이자 당신 자신이 곧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몸소 제자들이 발을 씻어 본을 보여 주시면서 까지 자기 스스로를 낮추라 하셨다. 그런가 하면 초대를 받아 갔을 때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까지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기는커녕 그리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목사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목사님들께 한 마디—

 

‘그러고도 목사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이라 생각하시나요? 다른 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시정을 했는데, 목사님은 왜 아직까지 축도를 ‘~지어다’로 끝내나요? 어떻게 감히 왕 같은 제사장들인 교인들을 향하여 ‘~하여라’라고 할 수 있나요? 그것도 ‘~지어다’에서는 ‘~하여라’에 더해 거드름이 한껏 묻어나고 있지 않나요?’

 

 

사자(死者)들의 세계보다 더 조용한 세상은 없다

 

교회를 개척하여 그 초반은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얻으면 그야말로 왕 같은 제사장을 대하는 것처럼 극진하게 대한다. 그러다가 교인수가 늘어 100명이 되고 200명, 300명이 되어 교회가 중형이 되고, 또는 대형이 되면 목사에게 권위에 카리스마까지 더해 목이 뻣뻣해지기 일쑤이다. 말씨는 부드럽고 외양 또한 겸손해 보인다 해도 실상은 왕 같은 제사장은 자기 하나뿐이고 교인들은 왕의 백성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교회를 중형, 또는 대형으로 만들었다면 그 능력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성경지식이 해박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성경을 경전으로 하는 종교이니 그 지식이 깊고 넓다는 것은 은총이다. 그러나 그 지식이 카리스마를 더하게 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범접하기 어렵게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교인들은 교회에, 또는 목사에게 신앙상의 문제가 있어 보여도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했다가는 말씀을 들어 아니라고 할 것이 빤한 일이니 말이다. 아니, 그런 면에서라면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담임목사에게는 이미 그의 힘으로 작용하는 철옹성 같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으니 그를 상대로 문제를 말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교회에서 성경이나 하나님의 뜻에 맞고 안 맞고는 문제가 안 된다. 담임목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래 맞다. 시정한다. 다는 아닐지라도 사안에 따라서는 그렇다고. 그도 아니라고? 아니다. 그건 필자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 명성교회의 세습사건을 보라. 그런데도 필자의 말이 틀렸다고 할 것인가. —

 

어찌할 거나! 우리의 교회들이 세속화되다 못해 세상보다 더 썩어 악취가 나고 있으니. 설교는 못마땅한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고,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 아니라 카리스마를 살찌우는 데에 양식이 되어 교회의 언로를 막는 도구가 되었다.

 

‘물결 하나 없는 호수처럼 조용한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가 아니라 죽은 교회이다. 흐르는 물을 막아 물결하나 없이 조용한 수면이 되도록 할 수만 있다면 공기까지 차단해 보라. 그 물이 어떻게 되겠는가.

 

보라, 사자(死者)들의 세계보다 더 조용한 세상이 있는지. 자주는 안 되지만 가끔은 자그마한 다툼도 있는 것이 자연스런 인간사이다. 이 세상에도 하늘나라를 건설해야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천국일수는 없다.

 

어쩌다 의견차로 인한 다툼이 일어나면 조금이라도 빨리 말씀이라는 거울에 비춰 보면 된다. 그래도 그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그것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고 교회를 본질적으로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 쪽이 먼저 두 손을 들면 된다. 그런 것을 가리켜 지는 것이 이기를 거라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부처님의 가운데 토막 같은 말 하지 말라고 하지 마라. 최소한 그렇게 하려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크리스천이다.

 

끝으로 목사님들께 말씀드린다.

 

 

말씀을 말씀되게 하십시오. 지식으로 끝내지 말고, 교인들의 입을 막으며 교회의 언로를 막는 도구로도 사용하지 말고,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십시오. 목사도 평신도도 교인 누구도 다 왕 같은 제사장이니 혼자서만 왕 노릇하지 말고 왕좌에서 내려오십시오. 목회는 그 위에 주추를 놓고 하는 것입니다.’

손경순 18/01/16
답변
구구절절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