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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의 인물 [상동청년학원의 국어교사 장지영]#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9 00:00 조회 5,394
   독립 운동과 한글 보급 운동에 헌신하신 [장지영(張志英,1887∼1976)]     국어학자, 교육자, 언론인.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열운. 서울출신. 1891년부터 가숙(家塾)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03년 4월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한어과에 입학, 수학하고 모교에서 부교관으로 근무하였다. 1908년부터 1911년 사이에 주시경의 문하(門下)에서 국어학을 연구, 여기서 나라사랑의 정신과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1911년 이후, 교육계에 종사하기 시작하여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서울의 상동청년학원, 경신중학교 등에서 국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1912년경에 유지들과 [물산장려회]를 조직하여 무명을 손수 짜서 옷을 지어 입는 운동을 벌였으며, 1913년 경에는 독립운동단체의 하나인 청년비밀 결사대 '흰얼모(白英社)'를 조직하여 국내는 물론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통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1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고종황제의 승하 내막을 폭로하여 국민들의 의분을 불러일으키기로 하고, 3.1운동을 도왔다. 또한, 1920년 대동단(大同團) 당수 전협(全協)의 부탁으로 의친왕을 상해로 모셔가서 왕정을 세우려는 계획을 온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독립 선언문을 기초하기도 하였다.     1921년 12월에는 국어, 국문을 체계있게 연구하기 위하여 여러 뜻있는 사람들과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였다. 또한 조선일보에 근무하면서 문맹퇴치와 한글보급운동을 맹렬히 펴 큰 성과를 올렸다. 그후 국어학계에 종사하다가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홍원과 함흥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때 그는 한글 동지 30여명과 함께 홍원경찰서에 갇혀서 모진 고문과 심문을 받고 잡힌 지 1년만에 함흥형무소로 갔으며, 1944년 10월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함흥에다 거주제한을 하여 바로 떠나지 못하다가 3년만에 귀가할 수 있었다.      해방후, 서울대학교, 연희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제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였으며, 국어발전과 독립운동에 대한 그의 공로를 치하하여 많은 표창을 받으셨고, 돌아가신 이듬해(1977년)에는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어전], [국어입문], [옛글], [향가], [홍길동, 심청전](주해서)과 유고를 정리, 간행한 [이두사전](정음사,197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