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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열사 묘소 #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9 00:00 조회 5,947
                                             헤이그 이준(李儁)열사 묘성(墓城) -튤립의 나라에 살아있는 우국의 넋-  「헤이그」교회 「니에·아이큰다인」공동묘지 안에 있는 이준(李儁)열사의 묘지는 지난해 흉상과 묘비(墓碑)가 제막되어 한결 정화돼 있다.외무부의 「李열사 묘적(墓跡)정화사업」은 3천 5백만원을 들여 이루어졌다. 조각가 백문기씨(전 이대(梨大)교수)사 높이 90cm·어깨 폭 72cm·가슴두께 40cm의 청동 흉상(胸像)과 높이 2·3m의 조석묘비, 그리고 애석(艾石)으로 만든 상석(床石)과 화강암 석병풍, 대리석 화병(花甁)·향로(香爐)들을 모두 서울에서 제작, 옮겨왔다.묘역바닥과 울타리에 쓴 화강암은 거울같이 비치도록 7천번의 물갈기로 곱게 갈았다. 습도가 유달리 높은 「네덜란드」지역에서 돌의 산화를 막고 이끼를 방지하기 위해서다.李열사의 흉상은 분사(憤死) 며칠전 「헤이그」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에 따라 수염이 있는 기품있는 모습이다. 열사의 묘지를 찾는 한국인의 발걸음은 그침이 없고 싱싱한 꽃다발도 끊이지 않고 놓인다.「파리」의 유학생이건, 서독에서 일하는 광부들이건 한국인들은 이역(異域)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달래고 뜨거운 동족애를 확인하려는 듯이 열사의 묘지를 찾는다. 기자가 李열사의 묘역의 묘역을 찾아들었을 때에도 두 어린이를 이끈 한 한국인 주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72년엔 저녁 늦게 닫혀버린 공동묘지의 담을 넘어 들어간 한국인 청년들이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단지 애국열사의 묘역에 참배하려는 순수한 뜻」이 판명되어 석방, 화제가 된 알까지 있었다. 묘역은 원래 가로 3·6m, 세로 2m가 못돼 몹시 협소했고 묘비의 국명조차 잘못 표기돼 있었다. 확장은 「네덜란드」정부와 공동묘지측의 협조로 이루어졌다.인접 묘지의 연고자들을 설득, 이들의 묘지를 옮기고 8필지의 공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 1978. 6. 30 중앙일보 - -이 근 량(李根諒)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