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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학원 시초는 2대목사 스웨어러가 설립한 학교 #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9 00:00 조회 5,650


(1) 수원에 기독교가 잔래된 시기



      이러한 수원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언제쯤일까. 수원에서 가장 먼제 세워진 교회로 알려진 수원시 장안구 북수동에 소재한 종로교회(담임=유상국목사)는 1900년 4월 10일을 교회창립일로 기념하고 있었다.종로사거리 후생병원 옆에 위치한 종로교회가 창립일을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었다. 다만 여러 가지 기록으로 볼 때 수원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1893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땅에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된 이래 수원지방은 처음부터 미감리회 선교구역으로 1893년 미감리회 한국선교회 관리자인 스크랜톤선교사가 수원 및 공주지방 선교책임자로 임명된 것을 알 수 있다. 알려진대로 스크랜톤선교사는 미감리회 한국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1885년 5월 아펜젤러와 그의 어머니 스크랜톤과 입국, 병원선교에 힘써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수원에 직접선교를 했는지는 아려지지 않고 그후 1898년 스웨워러목사(한국명=서원보)가 수원 및 공주구역장으로 임명, 수원선교를 담당하였다. 스웨어러목사는 1896년에 내한했으며, 무스선교사와 함께 감리회보 편집위원으로 1912년까지 근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웨어러목사는 1898년부터 수원시내에 선교부기지와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지역민들 거센 반발에 부딪혀 그때마다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그러던 가운데 업친데 겹친 격으로 그가 파송한 김동현이 관아에 붙잡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1901년 스웨어러는 이미 무지내교회를 설립한 그의 동역자인 김동현을 보내 수원지역의 한 장소를 물색하고 기지매입을 서둘렀다. 그러나 수원 서문안에 초가 10여칸을 사서 수리에 들어간 김동현이 갑자기 관아에 구속된 것이다.





      그 이유는 정조의 진영을 봉안한 화령전(수원시 장안구 신풍동 123. 사적 115호) 가까이에 기독교인들의 예배장소를 세우는 것은 불경스럽다는 것이었다. 화령전은 1801년 순조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그 안에는 정조의 진영이 있다.스웨어러는 김동현의 석방을 위해 미국공사 알렌까지 동워했으나 소용이 없었으며, 매도증서를 관리에게 넘겨 주자 석방했다고 한다. 그후 스웨어러는 당시 인천교회 교인이었던 이명숙을 파송, 결국 북문안에 있는 13간짜리 초가집을 매입하는데 성공했다.



그해(1901년) 이명숙전도인의 일가가 이주를 하였고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선교사 휴양관을 겸한 예배당을 건축하였다.이 교회의 처음 이름은 보시동교회였다. 이 보시동교회는 1906년(다른끼록은 1907년) 종로로 옮기면서 이름을 수원읍교회로 고쳤으며 그후 언제인지 정확히는 알수없으나 다시 수원종로교회로 개칭했다.





1900년대 복음 전파



수원지역은 선교초기 선교구역분할협정에 따라 감리교회가 먼저 생겨났으나 처음부터 선교협정에서 제외되었던 성공회나 구세군의 선교가 일찍부터 전개되엇다. 특히 성공회의 경우, 감리교보다 불과 2년뒤인 1904년부터 수원선교를 시작했다.





수원시 권선구 교동 11에 위치한 성공회 수원교동성당(관할사제=박경조신부)주보는 교회 창립년도를 1904년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성공회백년사](이재정지음)는 {수원에 임시성당의 문을 연 것은 1905년 성탄절이었으며, 1908년 7월에는 새 성당 건축을 완성하고, 1909년 1월 26일에 200-300명의 ㅎ한국인이 운집한 가운데 주교가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성스테반성당이라고 명명하였다}고 적고 있다. 장로교는 이보다 훨씬 뒤인 해방이후부터 이루어졌다.



      수원기독교사에서 지금까지도 기독교가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선교초기부터 교육사업에 앞장서 앞기 때문이다. 종로교회를 세운 스웨어러목사는 15명의 소년들을 모아 학교를 시작했다. 이 학교는 곧 삼일학교의 전신이 되었으며, 수원 이남지역에서는 최초의 교회부설학교였다.



      삼일학원은 1903년 5월 7일 당시 종로교회 교인이며 지역유지인 유지인 이하영(후에 목사가 되었음)을 비롯한 7명의 인사들이 교회를 빌려 수업을 시작함으로써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위기를 넘기면서도 기독교에 바탕을 둔 인격적인 훈련을 학교로 유명한 삼일학원은 현재 중학교를 비롯 상업고등학교, 공업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선교초기 미북감리회 선교부의 도움을 받던 이 학교는 그동안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삼일학원이 기독교정신으로 바로 서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숨은 공로가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똑같이 삼일학당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매향여자중학교와 매향여자상업고등학교는 언제부터인지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학교가 되어 있다.



                                                                                                            <기독교신문. 199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