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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리교회의 역사 #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9 00:00 조회 5,712


                          한국감리교회 역사



한국감리교회가 1884년 맥클레이 박사(Rev. Dr. R. Maclay)를 통하여 한국에 처음 들어 왔는데, 그는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그 때에는 일본에서 미감리교회 선교사업을 관리하였다.) 그가 주선하여 감리교회 주최하에 교육과 의료 사업을 한국에 개시하기로 고종 폐하의 허가를 얻어 가지고 그 실행을 미국선교본부에 청원하였다. 한국에 선교사업을 시작하자고  맨 처음부터 주장하던 볼티모어시에 있는 가우처 박사(Rev. Dr. John F. Goucher)의 원조와 장려로써 1885년에 미감리교회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한국에 파송되었는데 그들은 아펜젤라 목사 부부(Rev. H. G. Appenzeller &wife)와 스크랜톤의사 부부(W. B. Scranton, M.D. & wife) 였으며, 또 스크랜톤 의사의 어머니 스크랜톤 부인(Mrs. M. F. Scranton)은 미감리교회 여선교회 대표로 건너왔다. 그들이 전도사업에 착수하는 동시에 남녀 학교도 바로 설립하였다.



  1885년에 윤치호 씨가 중국에 가서 유학하였는데 그가 거기서 남감리교인이 되었으며 또 그가 1895년에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한국에서 선교하는 것이 필요한 것을 말하여 남감리교회 선교본부에 청원하였다. 그의 청함을 받은 헨드릭스 감독(Bishop E. R. Hendrix)과 중국서 선교하던 이덕 박사(Dr. C. F. Reid)는 같은 해 10월에 한국에 와서 선교사업의 개시를 결정하고 교회기지를 샀다. 그 이듬해에는 이덕 박사가 가족을 데리고 맨 처음의 남감리교회 선교사로 상해에서 서울에 건너와 전도사업과 교육 사업을 착수하였으며 그 뒤에 얼마 안았다가 강부인(Mrs. Josephine Cambell)이 중국으로부터 건너와 여선교회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이 두 감리교회는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같이 발전하며 여러 기관을 협동 경영하는 동시에 각각 맡은 지방을 교화시키기에 노력하였다. 1927년에 와서 이 두 교회 사이에 점점 농후하게된 조화적 정신과 우의적 태도가 두 연회로 하여금 연합하여 각각 그 총회에 "한국에 있는 두연회를 합동시키어 자치하는 한국감리교회를 조직할 것과 전권위원회를 파견하여 그 임무를 다 하도록 하여주기를 " 청원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그 두 총회는 청원을 허락하고 연합 전권위원을 결성 파송하여 1930년 12월 2일에 제 1회 총회를 열고 아래와 같이 교리적 선언을 발표하고 장정 규칙을 제정함으로써 기독교 대한감리교회를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