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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인물-김진호 목사(4) 애산과 전덕기목사 #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7 00:00 조회 5,611
상동인물-김진호 목사(4) 애산과 전덕기 목사





                역사인물에게 듣는 교회사 이야기 4 (주간기독교 자료에서)





‘출애굽’의 하나님, 이 민족을 도우소서!



하나님과 민족을 사랑했던 운동가 전덕기 목사



꼼짝없이 자리보전하고 누워지낸 지 벌써 몇 달째다. 폐병도 폐병이지만, 작년에 허리에 났던 악성 종기를 수술하고부터는 도무지 기운을 낼 수가 없다. 이제 때가 다 된 것 같다. 정녕 이렇게 가도 된단 말인가. 일본놈들이 거룩한 예배당에까지 총칼을 차고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세상…. 이제는 교회마저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못하니, 살아남은 동지들이 타향만리 망명길에 줄줄이 오르는 이 설움을 어디다 대고 하소연할꼬. 아. 김진호(金鎭鎬) 목사만이 내 병상 앞에 남아 서럽구나.

“형님, 이제 어찌하면 좋소. 동지들이 다 흩어지고 이 곳에 남은 자는 우리 둘 뿐이니…. 형님께 고되고 험한 일 다 맡겨 놓고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소리하지 마소. 전 목사는 그저 빨리 쾌차해서 일어날 생각을 해야지.”

“예. 그래야지요. 사력을 다해서 신민정신(新民精神)을 지켜 내야지요.”

“형님, 형님을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나 됐습니다.”

“그렇지. 을사년에 5조약 체결되면서 만났으니까 근 10년이 됐네.”





‘무자격 기관사’를 끌어내리는 노력, 그 10년 간의 회상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정자들이 기어이 우리나라 외교권과 내정의 권한을 모두 일본에게 넘겨주었다니…. 수백 년에 걸쳐 양반들의 허세와 권력노름에 짓눌려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고 살았던 우리 백성들이 이제 남의 민족 종살이까지 하게 되었다니. 게다가 그것은 알량한 양반들의 작품 아니던가.

그대로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만인이 평등하게, 동등하게 먹고 사는 참세상에 대한 꿈을 그렇게 짓밟혀버릴 수는 없었다. 이제 겨우 나는 그 참세상의 복음을 알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파르르한 전율을 느끼는 동안, 내 이웃, 내 친구들의 모습이 우왕좌왕 머리 속에 엉켜들었다. 남대문 시장통에서 숯장사를 하는 숙부 집에 얹혀 살 때 시장통에서 함께뒹굴어온 친구들. 시란돈(스크랜튼) 목사님을 만나 그와 함께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병자들, 부랑아들, 온갖 천대받고 살던 사람들. 이제 겨우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알았는데, 사람 대접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나는가 했는데…. 그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출애굽의 하나님을 깊이 불러 보았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그득 차오르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격이 없는 기관사가 운전하는 기차’입니다. 기관사가 아닌 사람이 기차를 운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 전체의 생명이 위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늦기 전에 기차를 난폭하게 운전하고 있는 몰상식한 기관사를 끌어내려서 승객 전체의 생명을 지켜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상동교회 지하실에 모인 엡웠청년회전국연합회 청년들은 모두들 내 이야기에 결연한 눈빛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풍전등화처럼 위험에 처한 우리 민중들을 생각하고 있었고, 정의로운 하나님께 마음 깊이 빌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일들을 단행했다. 조약 무효 상소운동을 벌였고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는 일, 을사오적을 암살하는 계획까지 꾸몄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무력을 통해 해결하기에는 이미 일본의 지배력이 너무 확고해져 있었다. 거대한 거미줄처럼 우리를 덮고 있는 일본에게 우리는 번번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선교사들마저 우리를 비난했다. 사악한 무력도발집단으로까지 매도하면서. 그들도 역시 ‘빼앗긴 자’가 아니라 ‘빼앗은 자’의 입장에 서 있었으니까. 그들은 우리 민중들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들이 전해준 하나님은 분명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안겨주는 하나님이라는 것 말이다. 그 하나님은 히브리를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키셨던 것처럼, 우리 민족을 식민현실로부터 탈출시키고 계시다는 그 사실. 그런데 내가 어찌 동참하지 않고 안일하게 예배당만 지키며 앉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물론 내가 무력에만 의지해서 해방을 얻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어서, 스스로 해방을 맞고 주체성을 기르는 일이었으니까. 그것이 곧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요, 궁극적으로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독립운동가들의 비밀결사조직 안에서 그들을 돕고 후원하면서도 밖으로는 상동청년학원 운영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한글과 역사, 영어와 체육, 그리고 성경까지, 민족의식과 신민(新民)으로서의 자주의식을 기를 수 있는 내용을 두루두루 가르치면서 그 곳에서 나는 나라의 독립, 민족의 구원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이었으며, 하나님의 임재 자체였다.



값진 이생의 삶에서 영원의 세계로

지난 10여 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이생의 맨 끝자락에 서 있으면서, 나는 온통 죄스러움뿐이다. 독립을 위해 이제나저제나 사력을 다하고 있을 동지들, 의지할 데 없는 우리 민중들을 두고 어찌 나 혼자만 그 아름다운 곳으로 간단 말인가. 그러나 이 민족을 구원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더욱더 암담하더라도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진호 형님, 힘을 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을 걸려서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 민족도 기어이는 해방될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요. 그렇고 말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지요.”

이제는 미련이 없다. 내가 비록 가난한 숙부 집에서 얹혀 살았던 고달픈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났고 더없이 값진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시대를 비관한 모리배가 되었거나 잘 되었어도 몰인정하고 과격한 무력항쟁가쯤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생을 살면서 아름다운 이상을 품었고, 사랑했고, 이제 영원의 세계로까지 들어가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 주여. 이 죄인을 굽어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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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결’에 얽힌 전덕기의 신앙관

1905년 11월, 을사5조약 체결에 항의하며 민영환이 자결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김진호)는 이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의 대표적인 교회 두 곳을 찾았다. 첫번에는 승동장로교예배당에 가서 주일 저녁 예배 본 후에 서경조 장로를 만나 민영환이 자결한 일을 교회에서는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서 장로는 별안간 답하기를, “민영환은 역적이지요”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에 몹시 자극을 받았다. 내 생각에 기독교인들은 나라를 모르는 썩은 놈들이라고 생각되어 그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궁금해서 그 때 명성이 높았던 전덕기 목사를 찾아가 서 장로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더니, 전 목사는 듣고 깜짝 놀라며, “그 말은 옳은 말이지만 잘못 들으면 낙심됩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것인데, 민영환이 자의로 죽었으니 하느님을 거슬렀다는 말이요, 나라의 역적이란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민영환이 양심(良心)으로 죽었으면 하느님이 죄로 여기시지 않습니다. 나는 전 목사의 말을 듣고 분연 깨닫고 그 때부터 전 목사 교회인 상동교회에 다니며 전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김진호 목사의 <팔일회고(八日回顧)>중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