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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인물-전덕기목사와 몽양 여운형 #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7 00:00 조회 5,368
전덕기목사와 몽양 여운형



이만규 저 '여운형 투쟁사' 중에서 나타난 상동의 자취



몽양이 야소교인이 된 것도 그의 애국적 정치사상의 발전이었다. 당시에는 국사에 관심을 가지고 혁명에 뜻을 둔 이가 많이 아소교 속으로 들어갔었다. 이상재, 이승훈, 이동녕, 이시영, 이회영 제 선배가 다 그러하였고, 청년들도 그러하였다.



몽양은 청년의 1인으로서 상동그룹의 인사와 교제가 되어 교인이 되었다. 당시 상동교회 안에는 덕망높고 애국심많은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우국지사와 애국청년들이 모여들어 교제하고 연락하고 모사를 하는 한 그룹이 있었다.



이동녕, 이회영, 여준(몽양의 숙부), 이승훈, 현순, 김진호, 김창환, 주시경 등 제인이 청년학원과 공옥학교의 직원이 되어 표면으로 학교 일을 보면서 이면에는 딴 경륜을 하였었다. 그리하여 이시영의 서간도 신흥사관학교 설계도 다 여기서 생긴 것이다.



몽양의 신교한 동기가 이러한 그룹과 연락한데 있게 된 것은 몽양의 사상으로 보아 당연한 이성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 전덕기 목사님과 몽양선생님은 아마 신민회 활동을 같이 하셨다고 증언되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여운형투쟁사 15페이지부터 16페이지에 걸쳐 씌어진 것인데 여기서 비밀연락조직을 만들었고 이면에서 경륜사업을 하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설계한 상동그룹, 이것은 바로 신민회를 명료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또한 몽양은 1906년 21세부터 국권회복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 국권회복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몽양이 때 1907년 4월 초에 창립된 신민회에 가입했으며, 신민회 청년회원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종래 발표되지 않았는데 서울대학교 사회학교 신용하 교수가 주장을 한 내용입니다.(학민사 간,여운형 노트 중에서)



명기된, 고향 양평에서 '국채보상 단연동맹(斷煙同盟)'을 조직하고 각지에서 순회연설을 한 것이 바로 신민회 회원으로서 구한말에 전개한 애국계몽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