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실

> 상동소식 > 역사자료실
한국교회사 연구 자료 문헌목록 #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7 00:00 조회 5,266
韓國敎會史 硏究資料 문헌목록



第1輯 



黃嗣永帛書                                               4.6판/ 89면/ 1966년/ 1,000원



≪황사영 백서≫는 1801년 당시 천주교회의 박해현황과 그에 대한 대책 등을 북경의 주교에게 건의 보고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압수당한 비밀문서로 모두 122행 13,311자에 달하는 장문을 가로 62Cm, 세로 38Cm의 명주에 작은 붓글씨로 쓴 글이다



  이 帛書의 내용은 박해의 실정과 신유교난의 전말 및 순교자의 약력을 소상히 보고하고, 당시의 국내정세를 분석하였으며 한국천주교회의 再興과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다섯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백서는 천주교 관계뿐만 아니라 조선후기의 內政.外交도 파악할 수 있는 귀중사료라고 하겠다.



  본서는 帛書本文 및 註 외에도 假帛書本文 및 해설, 討邪奏文 등이 실려 있다



第2輯



朝鮮政鑑 上                                                                                             4.6판/ 90면/ 1968년/ 품절



조선정감은 韓末 隱士의 한사람이었던 潘南 박제형의 저술로서 철종 즉위년부터 고종 초엽에 걸친 조선왕조의 이면사를 기술한 야사이다.  조선정감의 사료적 가치는 철종, 고종 초엽의 史實이 직접 목격자라고도 할 수 있는 실재인물에 의해 기록된 점이며, 특히 執政大臣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1966년 교회사연구소 서고 정리중에 조선정감 상권만이 나왔으므로 일단 상권만을 간행하게 되었다.



第3輯 



上宰相書                                                                                                  4.6판/ 28면/ 1970년/ 품절



상재상서는 丁夏祥(1795~1839)이 지은 우리 나라 최초의 護敎論書이다.  저자인 정하상은 신유박해 때 순교한 丁若鐘의 둘째 아들로, 신유박해로 와해되기 직전에 놓여 있던 조선교회를 재건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다하였다.  그의 꾸준한 노력으로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를 영입할 수 있어 조선교회는 독립된 교구로 발족케 되었으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상재상서[ 재상에게 올리는 글]을 저술해 두었다.  이 글은 모두 3,400여자에 달하는 짤막한 것인데, 천주교 기본교리의 설명, 호교론, 신교의 자유를 호소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하상은 이 글을 통하여 천주교의 진리를 밝혀 유학자에게 과감히 도전한 것으로, 이처럼 이 글은 19세기 중반기의 천주교 신도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인 열정과 교리에 대한 이해도를 가름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第4,5輯



天主實義 附 텬쥬실의                                                                                국판/ 603면/ 1972년/ 품절



천주실의는 예수회 중국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저술한 한역서학서이다.  상.하 2권 8편 174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국인 학자와 서양인 학자가 서로 질문 대답하는 대화체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주된 내용은 우주에는 만물의 창조주와 주재자가 존재하며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 것으로서 인간 각자의 행실에 따라 후세에 상선벌악의 응징을 받아야 하고, 윤회설과 같은 것은 그릇된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간행후 반응이 굉장히 좋아 중국뿐 아니라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양 여러 나라에 널리 유포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글로 번역되었다.  본서에 수록된《텬쥬실의》는《天主實義》의 한글 역본으로 그 사본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한글 표현과 제질로 보아 상당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보여지며, 본 교회사연구소 소장본을 이용하였다.



第6輯



東儒師友錄                                                                        4.6배판/ 875면/ 1977년/ 再版中, 복사가능



동유사우록은 조선 중기 대표적인 유학자 중에 한사람인 朴世采(1631~1695)에 의하여 저작되었고, 그의 문인이던 이세환이 이에 補篇을 부친 우리 나라 유학의 연원을 밝힌 저술이다.  아마도 현존하는 이러한 類書 중에는 가장 오래되고 체계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 《동유사우록》이 한국천주교회사를 밝히는 데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자료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주교가 우리 나라에 전래될 때 그 기층이 된 문화형태로서 유학 내지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교회사의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第7輯



邪學懲義                                                                            4.6배판/ 386면/ 1977년/ 再版中, 복사가능



사학징의는 1801년에 단행된 신유박해에 대한 기록이다.  '邪學'이란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천주교를 가르키는 말이었으며, '懲義'란 懲治政義의 축소형으로, 결국 《 邪學懲義》라는 제목은 천주교를 탄압하고 다스려서 正學인 성리학을 펴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형조와 포청의 자료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천주교 박해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의견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달레의 교회사나 그밖의 정부측 기록들과도 일치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이 《邪學懲義》를 통하여 우리는 종전에 달레의 저서나 관변측사료에서 겨우 그 인명만을 파악할 수 있었던 많은 인물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그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第8輯



京鄕新聞                                                                                    25x34.5Cm/ 883면/ 1978년/ 20,000원



경향신문은 1906년 10월 19일에 창간된 순한글로 씌어진 주간지이다.  체제는 타블로이드판 4면과 국판8면의 부록 ≪寶鑑≫을 포함한 12면의 신문체제로서 초대 발행인 겸 편집인은 드망즈(Demange, 안세화)신부였다.  경향신문은 참 개화와 거짓 개화를 분별시켜 근대화의 참된 의미를 깨우치게 하며 이를 위한 인격계발을 한다는 것이 창간 당시의 편집방침으로서, 천주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독자들에게도 영향력이 있어 1907년에는 정기구독자가 4,200명에 달하였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간당하였다.



본 자료집은 경향신문과 함께 간행되던 ≪寶鑑≫은 제외하고 축쇄 간행한 것이다.



第9輯



闢衛編                                                                                  李基慶編  신국판/ 633면/ 1978년/ 8,000원



벽위편은 정조, 순조, 헌종 3대에 걸친 천주교 박해에 관한 여러 문헌들을 모아서 편찬한 책으로 현재 2종의 판본이 있다.  하나는 정조와 순조 연간에 생존하였던 李基慶에 의해서 편찬되기 시작하여 그 후 후손들이 계속 자료를 보충한 것을 1931년에 이기경의 5대손인 李晩采가 闢衛社에서 石印本으로 간행한 7권 2책의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 판본을 現行本이라고 일컬으며 또 하나는 이기경 자신이 편찬한 것으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兩水里의 후손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온 4권으로 된 필사본인데, 이를 일반적으로 兩水本 이라고 칭하다.  본 자료집은 후자에 해당된다.



闢衛란 邪道를 물리치고 正道를 옹호한다는 뜻인 闢邪衛正의 준말로, 따라서 ≪闢衛編≫은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중엽까지의 천주교 신앙운동을 탄압하는 정부와 유교집단의 입장에서 정리한 사료이다.  이처럼 ≪벽위편≫이 어디까지나 斤邪論의 입장에서 박해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서 편찬한 것이지만 천주교가 전래한 초기부터 조선사회에 던져 준 충격과  반응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당시의 천주교회사뿐만이 아니라 사상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第10輯



가톨릭新聞                                                                               26.5x38Cm/ 전8책/ 1981년/ 180,000원



≪가톨릭신문≫은 본래 1927년 4월 1일 대구대교구 청년연합회에서 월간지로 ≪천주교회보≫라는 제호로 창간되었으나 1933년 폐간되었다가 1949년 다시 복간되었다.  1953년 ≪가톨릭신보≫, 1954년≪가톨릭시보≫, 1980년≪가톨릭신문≫으로 각각 바뀌었다.  지면도 창간 당시의 4.6배판 4면에서 1928년 타블로이드판으로, 다시 1959년 격주간지로, 1960년 다시 주간지로 증간되어, 현재 초교구적으로 발행되고 있는 배대판 12면의 주간신문 ≪가톨릭新聞≫으로 정착되었다.



≪가톨릭신문≫의 사료적 가치는 1927년 창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끈질기게 간행을 지속해 왔다는 데에 있다.  몇몇 평신도에 의해 창간되어 60여년동안 한국교회.한국민족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며 그것을 기록해 왔다는 점에 ≪가톨릭신문≫은 한국천주교회사를 연구.정리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자료집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본 자료집은 1927년 4월 1일자에서부터 1985년 12월 22일자까지를 전8책으로 영인 간행하였다.



第11輯 



경향잡지                                                                                              신국판/ 전46책/ 1984년/ 품절



경향잡지는 1906년 10월 9일 창간된 ≪경향신문≫의 부록 ≪寶鑑≫이 그 전신이다.  1910년 日帝에 의해 ≪경향신문≫이 폐간되자 1월 15일부터는 ≪경향잡지≫라는 제호 아래 주간지에서 격주간으로 바뀌어 복간되었다.  창간 당시 발행인 겸 편집인은 드망즈(Demange, 안세화) 신부로 국판 8면의 크기였다.  애국계몽적인 '법률문답'의 내용이 가장 두드러지며, 그밖에 논설과 교회에 대한 지식 등을 수록하였다.  ≪경향잡지≫로 제호가 바뀌면서는 24면으로 증면되고 계몽적인 성격보다는 교리지식의 전달 등을 주로 한 내용이 부각되었다.  日帝의 탄압과 物資難 속에서도 어렵게 간행하였으나 결국 1945년 5월 15일 폐간되었다.  그 뒤 1946년 8월 1일 월간 18면으로 복간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또다시 폐간되었다.  휴전이 된 후 다시 복간되었는데 이 당시에는 주로 순교자 현양과 反共主義로 그 내용이 일관되다가 1959년 간행과 편집이 서울교구에서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로 이관된 이래 공의회 문헌 해설 등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문제를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 잡지가 한글전용과 새 맞춤법을 사용하여 한글보급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은 중요한 전통 중의 하나이다.  이 잡지는 한국 현대교회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본 자료집은 1906년부터 1941년까지를 65권으로 1차영인 발간하였으며, 1942년부터 1962년까지를 11권으로 2차 영인 발간하였다.



第12輯



셩경직 .셩경직 광익.聖經直解.聖經廣益                                   신국판/전10책/1984년/140,000원,품절



≪셩경직 ≫는 천주교회 당국이 1892년에서 1897년에 이르는 기간에 한글로 활판 인쇄하여 간행한 것이다.  ≪셩경직 ≫는 필사본 ≪셩경직 광익≫을 대본으로하여 본문 줄거리와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셩경직 광익≫은 천주교회의 초창기부터 널리 읽혀 왔던 여러 필사본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은 한문본 ≪聖經直解≫와 ≪聖經廣益≫을 번역하여 편성한 것이다. 



≪聖經直解≫는 陽瑪諾이라는 중국 이름을 가진 이디아즈(E.Diaz) 신부가 지은 것으로, 각 항목은 주일이나 축일을 표시하는 표제, 성경귀절의 출처, 성경본문 주해 그리고 箴으로 이루어져 있다.  ≪聖經廣益≫은 ≪聖經直解≫와 마찬가지로 각 주일과 축일의 성경귀절 본문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뒤에는 주해나 箴이 없고 그 대신 宜行之德과 當務之求가 나타나 있다.  이런 점에서 ≪聖經直解≫와 다를 뿐 아니라 책 부피가 훨씬 작은 것이다. 



요컨데 한문본 ≪聖經直解≫의 성경본문, 그 주해 및 箴과 ≪聖經廣益≫의 宜行之德과 當務之求는 한데 어울려 한글본 ≪셩경직 ≫의 번역 원문으로 사용되었으며, ≪셩경직 ≫는 그 ≪셩경직 광익≫을 대본으로 마련된 것이다.



본 자료집은 위의 ≪셩경직 ≫≪셩경직 광익≫≪聖經直解≫≪聖經廣益≫을 모두 10冊으로 영인 간행한 것이다.



第13輯



가톨릭硏究.가톨릭朝鮮                      신국판/ 전9책/ 1985년/ 140,000원,품절



≪가톨릭硏究≫는 1934년부터 1938년까지 5년간 (1937년부터는 ≪가톨릭朝鮮≫으로 改題) 평양교구에서 간행된 월간지이다.  ≪가톨릭硏究≫는 매월 국판형으로 발행되었으며, 면수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50~90면 정도였다.  제호는 창간호(1934.1)부터 6호까지는 ≪가톨릭硏究講座≫였고, 그후 ≪가톨릭硏究≫로 改題되었다.  내용은 처음에는 성서.호교.교회사.전례.주일학교 교재 등에 관한 강의만을 실었으나, 그후 수양란, 독자란, 여성관, 아동관 등이 증설됨으로써 내용이 다양해졌고, 1934년 8월  평양교구 가톨릭운동 연맹 중앙부 의 기관지가 됨으로써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또한 부정기적인 특집의 발행으로 내용이 쇄신되고 증대되었는데 성모성월,매괴성월 등 성월마다 특집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순교기념호   朝鮮가톨릭世紀年報輯   祝賀大會特輯   大邱敎區設定 26周年紀念   間島宣敎 40周年紀念  같은 특집을 계속 기획하였는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가톨릭硏究≫와 ≪가톨릭朝鮮≫의 문화적 공헌은 컸으며, 또한 그 자체로도 오늘날 현재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를 위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다고 하겠다.  특히 평양교구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기본자료라 할 것이다.



본 자료집은 ≪가톨릭硏究≫와 ≪가톨릭朝鮮≫을 전9冊으로 영인 출간한 것이다.



第14輯



Grammaire Cor enne [韓語文典]                                     4.6배판/300면/1985년/9,000원,품절(복사가능)



≪翰語文典≫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신부들이 1881년 발행한 최초의 한국어 문법서이다.  4.6배판에 334면으로 서설과 제1부 품사론, 제2부 구문론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설에는 한국어와 중국어의 차이, 한국어의 語法과 書法 및 발음들이 서술되어 있고, 제1부 품사론에서는 존재사를 비롯한 9품사에 대하여 서술한 반면, 제2부 구문론에서는 품사에 따른 구문의 형태와 구문 구성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부록에서는 계절, 도량형, 방위 친척관계들을 별도로 정리해 놓았으며, 연습용 회화문과 21종의 전래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사전과 문법서 편찬을 위해 선교사들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나 병인박해 (1866년)로 말미암아 큰 어려움을 겪고 중국으로 탈출한 리델(Ridel, 李福明, 제7대 조선교구장)주교와 조선인 신자 김여경, 최지혁 그리고 권치문 등이 상해와 차쿠 등지에서 편찬작업을 계속하여 1876년 거의 탈고가 되었다.  이때 조선교구에 부임해온 코스트(Coste, 高宜善)신부에게 맡겨 일본 요꼬하마에서 인쇄하려 했으나 지연되어 오다가 1880년 ≪한불자전≫ (韓佛字典)이 발간된 이듬해인 1881년 요꼬하마 레비(Levy)인쇄소에서 출간되었다.  서양사람들 특히 프랑스인들을 위하여 佛文으로 만들어진 문법서이긴 하지만, 한국말이 처음으로 서양문법적인 체재에 의하여 연구된 문법서이다.  이 ≪韓



語文典≫은 한국교회사와 가톨릭 문화는 물론 한국근대사와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자 연구자료로서, 특히 국어학사나 국문학사, 그리고 出版史나 書誌學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第15,16輯



쥬교요지.셩교졀요.셩교요리문답.진교졀요.셩교요리.성교 문답.천주교요리.천주교요리문답.귀 일귀.치명일귀.병인치명자전                                                                    신국판/ 전5책/ 1985년/ 85,000원, 품절



≪쥬교요지≫이하 8종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리서이며, ≪긔 일긔≫이하 3종은 한국교회의 순교자 전기 중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즉 ≪쥬교요지≫는 초기 교회의 창설자의 한사람인 丁若鍾이 저술한 것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최초의 한글 교리서이다.  ≪셩교절요≫는 원래 1705년 중국에서 간행된 한역서학서로서 성호경.천주경.성모경.信經.천주십계.성교사규.죄.덕행 등을 풀이한 교리서이다.  ≪셩교교리문답≫은 중국에서 널리 보급되어 있던 ≪聖敎要理問答≫을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천주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교리서이다.  ≪진교졀요.進敎切要≫는 나이가 많고 愚蒙한 사람들이 천주교에 입교하기 위하여 마땅히 지켜야할 4가지 規矩와 명백히 외워야 할 7가지 經文을 아주 간략하게 적어 놓은 책이다.  ≪셩교요리≫는 천주교의 교리를 문답식으로 풀이한 일종의 교리서이며, ≪셩교 문답.聖敎百問答≫은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원인 Couplet 가 저술한 한역서학서이고 ≪천주교요리(대문답).天主敎要理大問答≫은 1925년 당시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인 뮈텔 주교가 기왕에 간행되어 사용되고 있던 ≪진교절요≫와 ≪셩교요리문답≫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새 교리서의 편찬을 뜻하여 간행된 교리서이다.  끝으로 ≪천주교 요리문답.天主敎要理問答≫은 1934년에 앞서 나온 교리서의 내용을 개혁함과 아울러 전국적으로 통일된 새 교리서로서 간행된 것이다.



한편 한글 필사본 ≪긔 일긔.己亥日記≫는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를 전후하여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은 순교자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초로 쓰여진 것으로서 1925년 시복된 79위 복자의 시복조사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료로 이용된 것이기도 하다.  ≪치명일긔.致命日記≫는 1866년 병인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일부 명단과 그 약전을 기록한 책이며, ≪병인치명자전.丙寅致命者傳≫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울에서 순교한 28명의 전기인데 다른 대부분의 순교자 전기와는 달리 전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목격증인의 증언에 의해 필사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본 자료집에서는 ≪쥬교요지≫이하 8종을 한국교회사 연구자료 제15집으로, ≪긔 일긔≫이하 3종을 제16집으로 영인 발간한 것이다.



第17輯



신명초 .묵샹지쟝.션 .복종정노.구령요의.셩샹경.묵상신공.삼덕략설.쥰쥬셩범.신공보화.텩죄졍규.회죄직지.셩찰긔략.사셩찰.사말론.텬당직로.련옥략설.련옥고남. 후믁샹.사말일언                          



                                                                                            신국판/ 전12책/ 1986년/ 180,000원,품절



한국교회사 연구자료 제17집은 ≪묵샹지장.默想指拿≫,≪텩죄정규.滌罪正規≫ ≪ 말론.四末論≫등 信心.默想書.省察 및 告解指導書, 四末論書 등 모두 18종 57책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이다.



≪묵샹지쟝≫을 비롯한 신심.묵상서들은 영세한 신자들의 신앙심을 더욱 깊고 두텁게 하는 여성 수양과 묵상 기도를 돕기 위한 서적들이다.  또한 ≪텩죄정규≫를 비롯한 성찰 및 고해 지도서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행위인 죄를 멀리하거나 지은 죄를 깨끗이 씻어내어 올바른 신앙생활로 이끌기 위한 良處省察과 고해성사를 잘 준비하도록 지도하는 서적들이다.  끝으로 四末論書란 사람이 결코 피할 수 없는 네가지 중대사 곧 죽음.심판.천당.지옥에 관한 교리와 묵상을 지도하기 위한 서적들이다.



이들 자료들은 한국교회사는 물론, 특히 당시의 교회와 신자들의 신심과 영성의 깊이와 폭, 그리고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많은 깨달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적 독서책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第18輯



별                                                                                              28x38.5Cm/ 280면/ 1986년/ 18,000원



≪별≫報는 1927~1933년까지 경성교구 천주교청년회연합회가 발행했던 月刊紙이다.  이 ≪별≫報는 사료가 귀한 1920~1930년대의 한국 교회사에 관한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사설.논설.종교.도덕.교리와 호교.한국 및 세계 교회사, 독자 투고 등등 다채롭고 풍부한 기사들은 당시의 교회관과 신앙관,교리 교육의 내용들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에 대구대교구에서 발행되었던 ≪天主敎會報≫[現 ≪가톨릭新聞≫ 의 前身]는 이미 영인 간행된 바 있으나, 이번에 새로 발굴된 ≪별≫報는 국내 유일본을 대본으로하여 간행되었다는 점에 더욱 그 의의와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第19輯



韓佛關係資料(1846~1887)                                                                 4.6배판/ 809면/ 1986년/ 25,000원



본 자료집은 불란서 함대의 내침이 시작되는 1846년으로부터 한.불간의 조약이 체결되고 비준되는 1887년까지 관계되는 자료들을 모아 수록한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자료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자료이고 국내자료로서는 한불조약 협상 때의 ≪談草≫, 조약의 초안 등 희귀하게 여겨지는 자료 몇 편만을 수록하였다.



외국자료들은 주로 미간행자료와 간행자료의 두가지로 구분되는 바 미간행자료란 이른바 필사본(mamuscript)들로 프랑스의 해군성 및 외무성 고문서고에 소장되어 있던 것들이다.



전체적인 자료의 구성은 1.불함내침 관계자료(불문 1846~1856) 2.병인양요 관계자료(불문1866~1867) 3.한불조약 관계자료(불문 1886~1887) 4.한불조약관계자료(한문 1886~1887)로 본 자료집의 영인간행으로 한불관계연구에 하나의 자극제가 되리라 믿어진다.



第20輯



마두복음,말구.누가복음,요한복음,슈난복음,성격직해,  셩경, 종도 젼, 서간묵시편, 신약성서상편, 성교감략, 고신셩경문답, 고경 고셩경, 쇼년성서, 젊은이의 성서                    신국판/ 전12책/ 1986년/ 160,000원



한국교회사 연구자료 제20집에서는 우선 한글역 신약성서로서 1910, 1922, 1939년판 ≪사사성경.四史聖經≫, 1922년판 ≪종도행전.宗徒行傳≫, 1941년판 ≪新約聖書 서간.묵시편≫, 1948년판 ≪신약성서 상편≫등이 수록되어 있다.  아울러 신.구약성서 관련서적인 1883년, 1931년판 ≪성교감략.聖敎鑑略≫, 1896년 이전 필사본인 ≪고신셩경문답.古新聖經問答≫, 한글 최초로 구약성서가 발췌.번역되어 있는 1880년, 1896년 이전 필사본인 ≪고경.古經≫, ≪고셩경.古聖經≫, 그리고 젊은 이들을 위한 이야기식 성서인 1925년판 ≪쇼년셩셔.少年聖書≫, 1949년판≪젊은이의 성서≫등 모두 15종 19책을 수록하였다.



이들 자료들은 모든 한국 천주교회의 성서 국역사의 연구 뿐만 아니라, 국어학사나 서지학 분양의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第21輯



가톨릭靑年                                                                                  4.6배판/ 300면/ 1985년/ 9,000원,품절



≪가톨릭靑年≫은 1933년 6월부터 1936년 12월까지 3년 반 동안 교회에서 간행한 월간잡지이다.  1933년 3월 18일 주교회의는  모든 출판물은 서울에서만 발행하도록 하며, ≪天主敎會報≫와 ≪별≫報를 폐간하는 대신 청년들을 위해 새로운 잡지를 창간한다 는 결정을 하고 동년 6월에 새잡지로 ≪가톨릭靑年≫을 탄생시켰다.  이 잡지는 5교구연합으로 중앙 즉 서울에서 간행되었고 조선가톨릭출판부 위원장인 서울교구장 원 주교가 그 편집과 발행을 맡게 되었다.  주간은 尹享重 신부였고 편찬위원은 장면 등이었다.  이렇게 창간된 ≪가톨릭靑年≫은 순수한 종교지의 입장을 취하면서 동시에 계몽지의 구실을하여 新文化를 수용하는 데에 앞장섰다.  우선 종교지로서 ≪가톨릭靑年≫은 철학, 신학, 호교, 성서, 교회사, 종교강좌, 가톨릭운동 등 그 취급분야가 다양하고 광범하였으며, 한편 사회.법률.언어.과학.미술.의학.문예분야 만이 아니라 방송용어란까지 마련함으로써 명실공히 계몽지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하였다.



특히 문예란은 1930년대 국문학상에 간과될 수 없을 만큼 그 수준이 높은 것이었다.  창작면에서도 李東九, 鄭芝溶 등의 활기찬 활동으로 종교문학 내지 가톨릭 문학이 운위돌 정도였다.



요컨대 ≪가톨릭靑年≫은 교회 안팎의 지성인을 상대로 한 최초의 고급 교양지로서 대중지인 ≪경향잡지≫와 쌍벽을 이루면서 3년 반 동안 안으로는 신자들의 영적인 면을 비롯해서 정서 면을 길렀으며, 밖으로는 국민 계몽에 일익을 담당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