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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장 상동 21세기의 출발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7 00:00 조회 6,775


             제23장 상동 21세기의 출발    



1. 이동학 목사 목회방향



이제 상동교회는 선교 2세기를 맞이하였다. 백년의 교회 발자취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간직하며, 새로운 백년 더욱 빛나는 선교 2세기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시대에 따라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상동교회 선교대열에 많은 사람들을 부르셨으니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다. 바로 이 시기에 상동교회 제24대 담임목사로 이동학 목사가 1988년 4월 3일 취임하였다. 

일찍이 선교사의 헌신으로 세워져 민중을 위한 선교를 감당하고 고통받는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며 구국운동에 앞장섰던 상동교회는 2세기의 출발과 함께 제23대 박설봉 목사의 후임으로 새 지도자를 맞이한 것이다. 지도자의 꿈만큼 교회가 성장한다고 했다. 그 동안 본 교회 선교담당 부목사로 평소 깊은 경건생활과 기도생활로 교우들의 신앙성장과 교회성장을 위해 힘써온 분이니 이제 가일층 지도역량을 발휘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교회부흥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상동교회는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그 첫째가 선교회와 속회 조직의 변화이다. 나이 10년을 단위로 하여 조직된 남선교회(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여선교회(백합, 국화, 장미, 목련, 개나리)를 나이 5년을 단위로 하여 남선교회(베드로1,2 요한1,2 야고보1,2 디모데)와 여선교회(사라1,2 한나1,2 에스더1,2 루디아1,2 마리아)로 달라졌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회원들과 떨어져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들도 없지 않았지만 차츰 분할된 선교회마다 각각 활성화를 위해 합심한 결과 전체적으로 더 많은 교우들이 선교회에 참여하게 되는 등 교회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고, 그 후 더 성장하여 남선교회 8개(이삭선교회 포함), 여선교회 9개(라헬1,2선교회 포함) 선교회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주며 교회를 이끌어 가기 시작한 이동학 목사는 무엇보다 ‘화합과 봉사’를 목회의 핵심으로 그리고 ‘선교하고 성장하는 교회’를 지향점으로 삼아 교인들에게 말씀하고 가르치고 훈련하였다. 교인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주인의식과 참여의식을 가지고 교회와 더불어 화합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선한 일, 좋은 일 많이 하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그의 교회관에 근거를 둔 것이다.

서로 동참하여 화합할 때 좋은 교회가 되며, 교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할 때 성장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인으로서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과 행사와 선한 일에 적극 동참하여 화합함으로써 성숙한 청지기가 되는 것을 강조하였다. 한 마디로, 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자가 될 때 선교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동학 목사의 목회관이요 교회관이요, 목회철학이다. 지난 11년간 상동교회의 연도별 표어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1989 동참하여 봉사하는 교회

1990 성숙한 성도, 성장하는 교회

1991 전도하는 교인, 역사하는 교회

1992 성숙한 청지기

1993 성숙한 청지기

1994 전도하는 교인, 성장하는 교회

1995 새로워지는 교회, 계속 전도하자

1996 배우고 생활하는 교회

1997 말씀과 생활이 일치하는 신앙인

1998 봉사하는 성도, 선교하는 교회

1999 새롭게 성장하는 교회



지난 11년간의 상동교회의 표어를 통해 목회방향을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성숙한 교회이다.

상동교회는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를 이어가는 교회로서 우선 그 지향점을 ‘성숙한 교회’에 두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숙한 성도, 성숙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봉사하도록 하는 데 목회의 중점을 두었다.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부흥회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신자들의 신앙적 삶을 위해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것인데, 상동교회도 부흥회를 열어 신자들의 신앙적 성숙을 도모하였다. 신자들이 적극 참석하고, 성가대 그리고 남대문 지역의 신자들도 함께 참석하여 많은 은혜를 받는 등 알찬 결실을 거두었다. 90년대 초에 개최된 부흥회는 1990년 9월(강사 장광영 목사), 1991년 12월(강사 김홍도 목사), 1992년 12월(강사 전택수 목사) 등이다.

이 기간 중에 상동교회는 대천 수양관이 지역 개발계획에 따라 수용되어 교인들의 신앙훈련을 위해 타 교회의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목회의 중점을 평신도 교육에 두었던 이 시기에 상동교회는 충북 제천에 있는 광림 백운수양관에서 교인들의 신앙훈련을 실시하였다. 임원 수련회를 비롯하여 남․여선교회 및 성가대 수련회 등 2년 동안 5회를 그 곳에서 실시하여, 교회를 섬기는 주요 임원들에 대한 신앙훈련이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성장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전도를 통해 불신자를 결신시켜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생명력이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상동교회는 이것을 잊지 않았다. 비록 도심지에 위치한 교회라는 불리한 지역여건임에도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점을 잊지 않은 것이다.

1994년, 이동학 목사는 ‘전도하는 교인, 성장하는 교회’로 표어를 정하고 전 교인에게 1년 동안 전도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상동교회 예배가 넘치도록, 앉을 자리가 없도록 모든 교인들이 전도인이 될 것을 당부하였다.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했으며 전도 목표는 ‘한 가정이 한 사람씩 전도하자’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도심지 교회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장애, 그리고 전에 없었던 실전 전도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였다. 교역자, 장로, 권사, 집사 등 모든 교인들이 하나되어 기도하며 실천해가기 시작했는데, 이와 같은 헌신적 참여의 결과는 놀랍게 나타났다. 1년 동안 307명의 새 신자가 상동교회에 등록하였다. 전도목표(‘1가정 1인’)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상동교회는 해낸 것이다.

1995년이 되어 상동교회는 300여 분의 새 교우와 함께 성전이 가득 찬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 감격이 계속되었다. ‘계속 전도하자’는 표어와 함께 2년 째 전도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5월 7일 주일부터 새로운 주일예배 2부(9시 30분)가 신설되어 드리게 되었다. 1, 2부 예배에서 1, 2, 3부 예배로 확장된 것이다. 이만큼 상동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1995년에는 또 171명의 새 신자가 등록하였다.



셋째, 배우고 생활하는 교회이다.

2년간에 걸쳐 470여 명의 새 신자가 등록하여 그중 240여 명(65%)이 계속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동교회는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양육의 필요가 생겼다. 이에 맞추어 1996년도 표어를 ‘배우고 생활하는 교회’로 정했다. 그래서 새 교우들에 대한 신앙훈련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부흥회(1996. 5. 13~15 강사 곽전태 목사)를 실시했는데, 특히 새 신자들이 함께 참석하여 신앙훈련을 받게 되어 의의가 깊은 기회였다.

상동교회는 오래 전부터 주일 장년성경공부(3개 반)를 실시해오고 있으며 별도로 성경통신반을 운영해오고 있다. 여기에 주 중에 실시하는 성경공부 반을 신설하였는데 1995년 6월 14일 개강한 트리니티 성서연구(강사 박광래 목사)와 1996년 12월 4일 개강한 수요 성서연구(강사 임철수 목사)였다. 수요일 오후에 40여명의 교인들이 참석하여 공부했는데 교인들의 신앙성장에 큰 도움을 주는 기회였다.

상동교회는 긴 역사를 가진 교회의 전형인 ‘가족관계의 교회’이다. 그만큼 교인들 사이에 가족관계가 많고 넓지만 타 가족들과의 유대감이 부족한 편이다. 1996년 들어 상동교회는 표어를 ‘배우고 생활하는 교회’로 잡으면서 가족 프로그램과 세대별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이는 가족간의 유대의식을 갖게 해주고, 세대별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것인데, 많은 관심 속에 교인들이 참여하여 가족간 유대의식이 형성되고 건강한 크리스천 생활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며 또한 가정과 교회 및 선교회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부터 부부들이 ‘찬양하는 부부들’이라 하여 모이기 시작했는데, 1999년부터 매월 셋 째주 석양예배 찬양을 맡아오고 있다.



넷째, 시험을 이기고 도약하는 교회이다.

1997년 말부터 닥쳐 온 한국 사회의 어려움은 상동교회에 커다란 시련의 시험으로 다가왔다. 상동교회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정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목회 외적인 갈등으로까지 시달려야만 했다. 징계라는 방법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시련의 시험이었다. 그러나 이동학 목사는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임을 믿고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하였고, 온 교우들은 합력하여 기도하며 교회와 함께 화합함으로써 흔들리지 않고 어려움을 잘 극복해냈다. 하나님께서 상동교회를 다시 새롭게 하시는 뜻으로 믿는다. 이제 상동교회는 어제의 시련을 발판 삼아 하나님의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도약하는 전기를 맞은 것이다.    

2. 선교하는 교회

(1) 교회개척, 지교회 설립, 성전 봉헌



삼일상동교회 개척과 성전 건축

1988년 10월, 상동교회는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개척교회를 설립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위해 개척교회 설립 및 성전건축위원을 선정했는데 위원 명단은 아래와 같다.



이동학, 김영상, 서성옥, 양봉순, 윤  달, 이광호, 이태호, 임성택, 이용직,

정남규, 이덕호, 임규택, 임완순, 박희웅, 임덕순



위원회는 수원시 매향동 삼일상업고등학교 구내에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의하고, 연건평 200평, 공사비 3억원으로 결정했다. 건축이 완공되자 1991년 6월 23일, 교회 창립 및 성전봉헌 예배를 드렸다. 당시 수원지역에 있는 교인 전원을 인계했으며, 상동교회 부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이원용 목사를 삼일상동교회 담임목사로 파송했으며 학원선교위원장을 겸하여 시무케 하였다.

지금의 교세는 세례입교인이 120여 명이고, 금년에 7천5백여 만원의 예산으로 수원 팔달지방에서 네 번째 가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그 동안 학원 선교에도 힘을 써 1993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세례준비교육을 시키고 세례를 주어 세례 받고 졸업한 학생이 5천여 명에 이른다.



지교회 능서상동교회 건축

경기도 여주 능서 상록교회(담임 오일영목사)를 지교회로 약정하고 능서상동교회로 개칭, 1994년 5월 새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본 교회에서는 건축비 1억 6천만원을 지원했으며, 대지(전답포함) 955평에 성전, 교육관, 사택 총 138평을 신축하고 1997년 5월 22일 봉헌하였다.

현재 장년 50명, 청년회 8명, 학생회 25명, 아동부 35명이 출석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를 섬기며 세계선교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 상동교회 출신 양정하, 차은경 선교사(스리랑카)를 협력선교사로 받아들여 후원하는 교회가 되었으며, 1993년에는 오일영 목사가 스리랑카선교후원회 회장이 되어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오일영 목사와 부인 박종원선생은 상동교회 출신으로 능서상동교회로 떠나기까지 본 교회 교회학교, 청년부, 선교회를 위해 오랫동안 우리와 고락을 같이 한 형재자매이다. 오목사의 심금을 울리는 구수한 복음성가와 기타솜씨는 우리 가슴에 지금도 남아있다.



지교회 유천상동교회 성전건축

충청남도 유천상동교회(담임 편종만 목사)의 성전과 주택을 동시에 건축하여 1991년 10월 10일 봉헌하였다. 최은혜 권사의 물심양면의 헌신과 본 교회의 협조로 이룩되었다.

1997년 4월부터 현재까지 백성현 전도사가 시무하고 있으며, 현재 교인 구성은 권사 3명, 집사 2명, 성도 5명, 어린이 3명이다.



(2) 해외 선교활동



상동교회 청년부 출신 해외선교사들이 각 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 교회는 이들의 출발과 현지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정한 선교사(1986년~1991년)

아프리카 케냐 원주민들에게 선교하여 현지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교육, 계몽, 봉사 등 많은 실적을 올렸다. 김정한 선교사는 1991년에 유학차 도미하였다.



송충석, 이정란 선교사(1990~1999년 현재)

김정한 선교사 후임으로 케냐에 부임하여 5개 교회와 2개 학교를 세웠으며 영혼구원 사역과 생활교육에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다음은 선교지에서 보내온 1999년도 서신이다.



그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변함없이 기도해주시는 동역자님들의 기도에 감사드리며 뜸한 소식을 전하여 까마득히 머나먼 땅이 되어가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주 안에서 안부를 드립니다.

요즈음 이 지역엔 해안으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콜레라가 발생, 수백 여명의 인명을 앗아갔고, 학교들은 휴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거친 도로상황, 물 문제들처럼 평범하게 겪어내기엔 힘든 시간들입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현지 청년 전도팀으로 루우벤을 단장으로 하여 20여 명입니다. 이들이 디고 마을마다 투입되어 있고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활동으로 분디니에 많은 결신자를 얻었고, 40여 명이 예배처소 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땅을 헌납한 사람이 있어서 흙과 돌, 슬레이트 등을 재료로 교회건물을 짓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할렐루야!  

                             케냐에서 송충석 선교사 드림



양정하, 차은경 선교사(1993~1999년 현재)

스리랑카에서 사역한다. 주민 선교활동은 물론 선교센터를 건립하여 현지 및 외지선교사 교육훈련까지 담당하며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은 선교지에서 보내온 1999년 4월 11일자 서신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7번째 제자훈련학교가 두 주간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오늘 돌아왔습니다. 한 팀은 아직 원시 상태의 미전도 종족인 베다족 마을에서 미용, 의료사역을 중심으로 전도했고, 한 팀은 힌두교인 타밀족 도시인 해튼이라는 곳에서 노방전도 하며 15살짜리 날때부터 벙어리였던 소녀가 팀들이 기도할 때 혀가 풀리며 말을 하게 되었고, 각 가정을 방문하며 전도할 때는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간증들로 풍성했습니다. 

이번부터는 제자훈련학교 강의 중간에 2주 짜리 전도여행을 두었는데 한국사람들과 스리랑카 사람간의 문화적 차이와 리더십의 차이 등을 미리 경험하게 하여 강의 후에 있는 9주간의 전도여행을 더욱 알차게 준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4주간의 강의와 그후에 있을 인도와 스리랑카에서의 전도여행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리랑카에서 양정하, 차은경 드림



박종건 선교사(1995~1999년 현재)

스리랑카 선교사역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으며 현지 신학원에서 교역자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다음은 선교지에서 보내온 1999년 7월 31일자 서신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지난주에는 ‘이륜번더왓다이’라는 지역에 선교차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도 선교(전도)행위를 시작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매달 두세 번씩 들어가 활동하기 위한 camp도 준비되었습니다. 온전한 가운데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려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 외 모든 기본적인 일들, nursery school, 전도사 교육, 교회시설 확충, 전도자 봉급 등등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의 은혜 아래 항상 강건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드리면서,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스리랑카 동쪽 Batticaloa에서 박종건 올림



(3) 농촌선교 봉사대 파견



상동교회 엡웟청년회는 198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농촌선교봉사를 계속해오고 있다. 국내 각 처의 농촌교회를 선정하여 가정방문 선교, 여름성경학교 주관, 농사노력봉사, 마을 청소, 주민과의 대화시간도 갖는다. 즉, 농촌교회를 본부로 정하고 인근 마을 일대를 봉사지역으로 삼아 밤낮으로 가르치고 일하고 선교하는 것이다. 1988~1997년간의 봉사대 파견지역은 아래와 같다.



1988. 8. 1~8. 6:경기도 이천 평민교회

1989. 7.31~8. 4:강원도 정선 자미원교회

1990. 7.29~8. 3:경기도 능서 상록교회

1991. 7.28~8. 2:경기도 광주 삼성교회

1992. 7.27~7.30:강원도 명주 소금강분교

1993. 8. 2~8. 6:경기도 강화 교동동산교회

1994. 8. 3~8. 6:강원도 평창 제일교회

1995. 7.31~8. 4:충남 대천 상동교회수양관

1996. 8. 5~8. 8:강원도 평창 종부교회

1997. 7.29~8. 1:강원도 고성 송암교회



(4) 특별전도운동과 결실



1994~95년간 상동교회는 ‘전도하는 교인 성장하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한 가정이 한 사람씩 전도하자’는 목표를 정하고 전도운동을 전개하였다. <화보>에 소개한 속회별 선교회별 전도 상황판(1994년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기간 중에 총 478명의 새신자를 얻었는데 이는 근래 가장 많은 전도의 수확이었다.





(5) 선교회 연합활동



일찍이 상동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로서 전국적이고 초 교파적인 연합을 도모하여 애국운동에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전국 감리교 청년연합회 등 감리교회 연합활동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는데, 이러한 교회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바, 최근에는 우리교회에서 전국 남녀선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전국 연합 회장이 나왔다는 것이다. 1990년 1월에는 김민옥 장로가 여선교회 전국 연합회장에 피선되어 감리교 여선교회 연합 활동을 이끌었으며, 특히 여선교회 회관(한남동 소재)을 건축하여 봉헌(1993. 10)하는 등 다른 어느 때보다도 여선교회 활동의 폭을 크게 넓혀 놓았다.

1995년에는 서성옥 장로가 남선교회 전국 연합회장에 피선되어 전국 단위 규모의 남선교회 활동을 보다 적극적이며 협력적인 관계로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특히 서성옥 장로는 이미 교회학교 전국 연합회장으로 수년간 활동한 바 있으며, 1997년부터 현재까지 초 교파적인 한국 교육자 선교회의 회장으로서 교육 및 선교 부분에서 광범위한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교회 장로님들의 여러 가지 활동은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교단적으로 또는 초 교파적으로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담임목사님과 교회의 협력으로 우리 교회는 아주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3. 시설 확장

(1) 별관 증축공사



상동교회 본건물은 지하 1층, 지상 11층의 규모와 누가 보더라도 외형상 교회 건축물로의 빼어난 설계로 남대문에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러나 신축 후 10년이 지나자 건물기능을 확장하고 현대화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1988년 1월 10일 정기 구역회에서 별관을 증축하기로 결의하고 아래와 같이 동년 2월에 착공, 6월에 준공하였다.



증축면적:2,529㎡(842평)

공사기간:1988. 2. 28 착공, 1988. 6. 30 준공

총공사비:6억원

용    도:식당, 친교실, 교회학교 교실, 부속실, 다용도실, 성가대실, 주차장



증축공사 건축위원회 조직

고  문:박설봉 담임목사, 이동학 신담임목사

위원장:서성옥 장로, 서기:정남규 장로, 위원:관리부 부원 전원



건축위원회 실행위원

당연직 실행위원:박설봉, 이동학

위 원:서성옥, 양봉순, 서장석, 이광호, 임광원, 윤  달, 김영상, 박세용, 임성택, 정남규, 김성환, 임완순



(2) 대천 상동수양관 신축



기존의 대천수양관(대지76평)은 1991년에 도시계획에 따라 수용되었으며 그 대토로 보령시 신흑동 1846번지 상업지구 124평을 구입했으나 활용성이 없기 때문에 1996년 류은옥 관리부장 재임시 1억 6백만원에 매각하고 1억원은 협성대학교 교지 구입비로 기부하였다.

1993년 관리부(부장 백석기)와 구역회 결의로 수양관 건축을 결의하고 아래와 같이 1994년 4월에 기공하여 1995년 3월 1일 봉헌하였다.

건축설계는 본 교회 양상준 권사(공간인식 대표)가 맡아 하였으며, 해송 우거진 대천 해수욕장변에 세우는 수양관이므로 자연친화적인 외장재료를 채택함으로써 자연과 어우러지는 외관형태를 갖추었다. 또한 상동교회의 이미지(image)를 위한 상징탑을 세워 교회수양관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모습을 갖추었다.

수양관 내부는 지하층에 대 예배실(150~200명)과 소 예배실(50명) 그리고 보일러실, 1층에 휴게실과 식당(60석), 2층에 11개의 방(8~10인용 5개, 4~5인용 6개), 옥상에 다락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치:충남 대천시 신흑동 2047번지

대지:212평(700㎡)

구조:철근콘크리트조 지하1층 지상2층 연건평 373평(1,198㎡)

건축비:12억원



건축위원회 조직

건축위원장:이동학 담임목사        실행위원장:백석기 관리부장

실행위원:한국명, 임광원, 이유근, 백석기, 양봉순, 재무부서기(정남규, 박재근), 남&#8228;여선교회(인규진, 김복선), 박희웅, 임완순, 김효권, 정원하(현장감독)  건축위원:실행위원과 관리부원 

자문위원:건축전문가 5명



(3) 목사 사택 3동 매입

중구 회현동 146-1 삼풍A 802호(22평), 1억원(92. 3. 5)

중구 회현동 146-1 삼풍A 710호(22평), 1억 3백만원(부목사 사택, 95. 5. 4)

마포구 도화동 우성A 15동 805호(48평), 3억원(담임목사 사택, 96. 1. 23)



(4) 본 건물 보강 및 개보수 공사



상동교회 본 건물은 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대규모의 개보수 및 증축이 요청되었다. 이에 1997년 1월 19일 정기임원회에서 본 건물 증축, 개보수, 엘리베이터 교체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아래와 같이 공사를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보강공사

별관 5, 6, 7층의 취약부분에 대한 그라우팅 공사와 바닥 재시공

공사기간:1997. 1월-4월

공사비용:2억4천만원



설비 및 개보수 공사

본 건물 전체의 난방배관 공사, 냉방배관 공사, 소화배관 공사, 위생배관 공사, 닥트 공사, 자동제어 공사, 엘리베이터 1, 2호 교체공사

공사기간:1997. 5월-10월

공사비용:15억원



위원명단

담임목사, 류제연, 윤  달, 박종원, 임규택, 인규진, 양상준(관리부), 서성옥,양봉순, 한국명, 이태호, 박영주, 김진휘(재무부), 류은옥, 임광원, 정남규,최현웅(새로나), 최창호



(5) 상록원 관리인 숙소 개축 및 공동등기

안산시 선부동 산 1번지의 상록원(교회묘지) 관리인 김종섭 씨 자택을 개축하는 건에 대하여 1997년 관리부(류제연 부장)에서 아래와 같이 공동건축하고 이를 공동소유로 등기하였다.



대  지:상록원(본 교회 대지)

건  평:75평

건축비:교회가 3천만원을 부담하고 일부는 관리인 김종섭 씨가 부담

등  기:상동교회와 김종섭의 공동소유로 등기하였다.



4. 1988~98년간 교회의 주요 투자사업 총괄

연도별

주요 사업 내용

소요금액(원) 1988

별관 5, 6, 7층 증축(연건평 842평) 600,000,000

1988 지교회, 삼일상동교회 신축(연건평 200평) 300,000,000

1992 (관리인)사택, 삼풍A 22평형 1동 매입 100,000,000

1994 대천 상동수양관 신축(대지 212, 건평 380) 1,200,000,000

1995 부목사 사택, 삼풍A 22평형 1동 매입 110,000,000

1996 지교회 능서상동교회 신축보조(연건평 138) 160,000,000

1996 담임목사 사택, 마포 우성A 48평형 1동 매입 300,000,000

1997 본건물 보강, 개보수, 승강기 교체 총공사비 17억 1,040,000,000

1997 삼일학원 보조(협성대학교, 삼일중고등학교) 1,720,000,000

1997 부목사 사택 전세, 영천 삼호A 32평형 120,000,000

1997 상록원 관리인 숙소 건축비 일부 담당 30,000,000

계 11건  5,680,000,000



5. 장학 사업

상동교회에서 장학사업은 중요한 부서이다. 1973년부터 장학사업을 위하여 장학기금을 적립하여 27여 년이 되었기 때문이며, 1979년에 장학금이 1,870,140 이었으나 1999년에는 3억원이 넘게 적립되었다. 자연발생으로 교우들에 의해 적립되었기에 더욱 강조할 만하다. 의도적으로 강조했다면 10억원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앞으로 더 많은 장학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되고 있다. 1989~1999년까지 수혜자 학생은 700명에 이르고 있다.

1999년 장학 규정에는 일반장학금과 인재양성 장학금으로 나누어 있다. 일반장학금에는 성적우수 장학금, 봉사 장학금, 불우 이웃돕기 장학금으로 구분된다. 성적우수 장학금은 대학 학기당 성적 A학점 이상자이며, 봉사장학금은 6개월 이상 각 기관에서 봉사한 대학생이고, 생보자나 불우한 학생은 전도사님의 추천으로 장학금 신청을 할 수 있다. 인재양성 장학금으로 10년 이상 본 교회에 적을 두고 석사학위를 갖고 외국 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유학시 신청할 수 있으나, 토플 550점 이상이어야 한다. 앞으로 장학 법인을 설립하여 더 많은 인재양성과 10억 이상의 장학기금이 모금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1977년부터 장학 위원장에 박은용 장로, 임광원 장로, 최명기 장로, 이광호 장로, 윤 달 장로, 김영상 장로, 류은옥 장로, 박영주 장로가 수고했으며 1999년에는 이유근 장로가 수고하고 있으며, 1993년부터 서기로 박희웅 권사가 수고하고 있다.



(1) ’89~99 수혜자 인원현황

(생략~)



(2) 장학기금 및 지급액 현황(1989~1999)

년 도

구 분

장학기금

지급액

89

교회장학금

112,884,960

11,630,000

월당장학금

12,294,034

90

교회장학금

136,983,677

12,420,000

월당장학금

12,803,907

91

교회장학금

153,898,034

15,940,000

월당장학금

12,452,255

92

교회장학금

177,440,891

18,845,000

월당장학금

12,414,692

93

교회장학금

207,484,067

18,630,000

월당장학금

12,259,214

94

교회장학금

224,670,577

18,720,000

월당장학금

12,133,952

95

교회장학금

257,471,702

20,010,000

월당장학금

12,099,359

96

교회장학금

315,469,738

26,750,000

월당장학금

12,151,868

97

교회장학금

356,579,272

25,625,500

월당장학금

13,140,331

98

교회장학금

298,191,875

21,675,500

월당장학금

13,413,804

99

교회장학금

313,059,774

22,167,500

월당장학금





※목회자 양성비 지급액

91년 3,500,000            92년 7,000,000            93년 7,000,000

94년 7,000,000            95년 8,250,000            96년 3,300,000



6. 교육 사업

상동교회는 과거 수 십 년간 공옥학교, 상동청년학원 등을 경영해왔으며 이를 통해 국민계몽, 민족정신 함양, 근대교육의 확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후, 삼일학원을 인수한 상동교회는 3개 중&#8228;고등학교의 학교경영으로 수도권에서 중등교육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1977년 감리교 서울신학교 설립을 결의한 이래, 1990년대에 와서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협성대학교 역시 상동교회 교육사업의 큰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각급 학교별 발전상황을 이제부터 간략히 기록하기로 한다. 본 항에서는 내용을 한정하여 일반적인 학교 행정, 재정, 교육일반 사항은 최소한으로 요약하고 주로 기독교 교육 부분에 초점을 두며, 1988~1999년간의 발전상황에 한정하고자 한다. 각 학교 기관장 및 실무부서 책임자가 제공한 기본 자료를 참조 기록한 것임을 밝혀둔다.





삼일중학교



삼일중학교는 9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이다. 그러나 1973년 경영난에 빠져 폐교위기에 처해 있을 때 마침 불교재단이 이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불교재단으로 넘어갈 상황이었으나 상동교회가 기독교적 사명감을 가지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인수하였다. 그 후 삼일중학교는 큰 발전을 거듭하였다. 1999년 2월까지의 총 졸업생수는 18,077명이다.

학급당 학생수를 보면, 80년대 중반만 해도 학급당 70명 수준이었으나 1999년 현재 학급당 44명으로 크게 감소되었다.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학급당 학생수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 면에서도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발전을 하였다. 교실수가 부족하여 고등학교 야간 여학생들과 2부제로 수업 운영하던 것을 93년 믿음관 5층 건물, 95년 소망관 건물이 완공됨에 따라 2부제 수업을 폐지하여 교육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었다. 수업진행도 첨단 교육매체를 이용하고 1학년 7개 교실에 멀티 프로젝션 TV, PC 등 첨단기자재를 설치하여 활용하고 있으며, PC를 통한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과 정보전달 효과를 높이고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고려한 단계별 수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요구에 따라 운동장, 교실 등 학교시설이 지역사회, 평생교육, 성인교육에도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다.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새로운 학교문화를 창조하자는 취지에 따라 삼일중학교는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 책무라는 인식 아래 학교경영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신장하고 교직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풍토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교원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진정한 교육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신념으로 교원과 학부모,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폭넓게 참여하여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담당하는 열린교육 체제로의 전환이 모색되고 있다.

1993년 10월 12일에는 믿음관 5층 20개 교실(17개 학급교실, 과학실 3)을 봉헌했고, 1995년 6월 5일에는 소망관 2층 9.5개 교실(8개 학급교실, 학년교무실)을 봉헌했으며, 1998년 5월 31일에는 믿음관 6개 교실(음악실, 가사실습실, 컴퓨터실 3개, 보건실)을, 1998년 7월 20일에는 586 컴퓨터 52대를 설치하였다. 1999년 3월, 기념관을 법인 사무실로 사용하게 됨에 따라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을 소망관으로 이전하였고, 1999년 7월에는 교육청 지원으로 컴퓨터 10대를 지원 받아 업무용 컴퓨터 34대를 보유, 교사 1인당 1컴퓨터 보급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학내 전산망을 8월중 설치하였다. 1999년 7월 19일 농구부 숙소 3층 건평 78평 기공(1999년 내 완공예정)하였다.

학교장과 교감의 이동은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스런 인사이동이다. 1991년 2월말 허동현 교장이 사임하고, 동년 3월 25일 박수환 교장이 취임하였다. 1998년 2월말에는 김두렴 교감이 사임(안산공고 교장 취임)하고, 3월 1일 이경창 교감이 부임(학원내 이동)하였다. 1999년 2월말 박수환 교장이 정년퇴임하고, 동년 3월 1일 이경창 교장이 취임하였으며, 정태경 선생이 교감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3월에 최리균 목사가 삼일상업고등학교로부터 전임되었다.

1999년 2월 수원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수석합격 2명(수성고 박정환, 숙지고 정인태) 배출, 1999년 5월 수원교육청 주최 영재 선발시험에서 1학년 엄성록, 유기영, 이창환 군이 합격함으로써 학교의 명예를 높였다. 교사들도 1999년 5월 15일 스승의 날 기념으로, IMF로 인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제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교사들이 기금을 마련하여 학자금을 지급하는 등 1999년 7월에는 수원교육청 주최 환경 평가에서 32교 중 우수상 표창 받기도 했다.

삼일중학교는 기독교교육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성경교육은 학급별 주당 1시간 성경 수업과 주간 성경구절 암송을 실천하고 있다. 주 1회 정기 학생 예배와 절기예배, 특별예배를 드리고, 매년 1회 성가 경연대회를 갖는다. 매년 봄철 외부 목사님을 초빙하여 신앙 강연회를 실시하고 결신의 기회를 갖게 하며 신앙심을 돈독히 하여 참신앙을 갖게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 매일 아침 ‘하늘양식’을 가지고 학급 기도회를 실시하여 하루 하루의 생활을 반성하고 기독교적 성찰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는 신앙수련의 기회를 갖는가 하면 기독학생회는 율동반을 조직하여 학생예배시 찬양을 인도, 학원복음화를 선도하며, 하계 수련활동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연말 복지시설을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교목실에서는 교목실을 상담실로 개방하여 학생 생활지도와 인성지도에 힘쓰고 기독인으로 인도하여 지속적으로 지도한다.

특별활동 성가반을 편성하여 복음성가를 배우고 찬양을 통해 선교를 하며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게 하고 있다. 교사들도 매주 1회 목요일 오후 전체 모임을 가지고 성경 본문을 교재로 교리와 문답을 통하여 성서연구에 힘쓰고 있다. 학원연합예배를 실시하고 있는데 학원 내 교직원 연합예배를 통하여 교직원 상호 교류와 우의를 돈독히 하며 예배를 통하여 크리스천 교사로서의 기독교적 자질을 기르고 있다. 또한 기독교 교사연수 기회를 마련하며 교직원 하계수련회를 실시하여 기독교적 연대의식과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고 있다.



교직원, 학생 현황

(생략)

                     



삼일상업고등학교



1988년 2월 29일 삼일실업고등학교는 삼일상업고등학교와 삼일공업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건학이념인 기독교교육의 숙원사업, ‘교내 교회를 짓게 되는 날’을 교사&#8228;학생이 합심하여 기도한 결과, 상동교회가 100주년 기념교회를 교내에 건축해주었다. 매년 5월은 사랑의 잔치, 10월은 감사의 잔치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하고 있다.

시설도 눈에 뜨이게 달라졌는데, 교정 남쪽에 독립된 전산관(건평 493㎡ 3층, 1991년 8월 완공)을 건축하여 컴퓨터와 정보관련 실습실 기자재를 완비했고, 1996년 4월에 에스더관을 준공했으며 21세기 첨단 교육을 위해 멀티미디어실, 직장예절실, 포장디스프레이실, 멀티어학실, 유통정보실을 설치했고, 학교전산망을 위한 교육정보관(955㎡ 3층)을 1997년 12월말 준공하여 최첨단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1987년 5월 7일 체육관을 준공하여 학생들의 체력 단련은 물론 각종 행사에 유용하게 이용하였으나 건전 가요 대회, 사랑의 잔치 행사, 예배를 진행하기 위해 상고와 공고는 긴밀히 협조해야 했고 일정 중복으로 차질을 빚을 때도 많았다. 그래서 오랜 숙원사업인 교정 예배당 신축을 정성으로 기도한 끝에 658㎡(2층)의 훌륭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으니 삼일학원의 기쁨이자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다. 공사비는 상동교회 교인들이 당시 100주년 기념 헌신예배에서 조성된 기금으로 완성되었고, 이제는 상고, 공고, 중학교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예배를 드리며 각종 행사도 개최할 수 있게 되어 교육에 기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김기억 교장이 1988년 3월 2일 취임하여 삼일상업고등학교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1998년 2월말에 정년 퇴임하였다. 이익균 교장은 1999년 3월 2일 취임하여 동년 8월말 정년 퇴임하였다. 배용재 부장은 1999년 3월 2일 교감 취임한 후, 1999년 9월 1일 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김규원 교무부장이 1999년 9월 1일 교감으로 취임했다. 현 교직원수는 교사 69명, 행정실 10명, 총 79명이며 학생 수는 주간 1515명, 산업체특별학급 135명, 총 1650명이다. 

기독교교육 목표를 기독교적 인격 완성,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한 형제애 실천과 봉사에 두고 지도한다. 교직원 경건회, 학원 연합예배, 기독교 교사 연수 등을 통하여 학급 예배, 아침 경건회, 학생 주간 예배, 신앙강연회, 절기 예배, 특별 예배, 1인 1회 출석지도를 하고 있고, 토요찬양집회, 세수식과 세례식도 실시하고 있다. 신앙강연회는 매년 봄 신입생 신앙고취 및 재학생 신앙심을 돈독히 하기 위해 실시하는데,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3일간 학년별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 여기서 결신한 학생(약 30%)들은 교목실의 지속적 지도를 받게 된다. 졸업을 앞둔 3학년 학생들에게는 세례식을 통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다짐하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일시 및 세례자

1993. 9.27.  349명

1994. 4.11. 386명

1995. 9.13. 459명

1996.10.14. 385명

1997. 7.11. 378명

1998.10.17. 381명

1999. 6.24. 220명



신앙 전인교육으로 복음송, 율동 지도와 성가경연대회, 성경암송대회, 실로암의 밤 등을 실시하며, 신앙상담으로는 개인 상담, 집단 상담, 부적응 사고학생 상담, 불우 학생 상담, 환자 심방 및 경조 활동을 벌인다. 기독교 정신에 기초를 둔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인재를 육성하며, 21세기에 대비한 창의력과 개척 정신이 강한 정보화 사회 선도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강조하고 충효사상에 기초를 둔 예절바르고 주인의식이 투철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특성 중심내용으로 삼고 있다.





삼일공업고등학교



삼일공업고등학교의 전신은 삼일실업고등학교로, 1968년 당시 수원상업고등학교에 화공과 1학급 설치를 인가 받아 교명을 ‘삼일실업고등학교’로 개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73년 당시 장기홍 교장(이사장 김광우)이 서독 개신교 중앙 개발위원회로부터 후진국 원조 차원에서 기계과, 전기과 설치를 위한 원조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 내자부담금 중 3천만원을 상동교회가 지원하면서 공업계열학교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삼일실업고등학교는 상과주간 18학급, 상과야간 12학급, 상과 산업체 특별학급 21, 화공과 6학급, 기계과 6학급, 전기과 6학급 총 69학급의 비대한 학교가 되었다. 경영 효율성을 기하기 어려울뿐더러 공업계 학과는 순수 공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기도 교육위원회로부터 시설 및 실습 기자재를 지원받는 데 큰 어려움이 생겨 날로 발전해 가는 공립공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 되어가는 현실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에 당시 서장석 교장(이사장 박설봉)은 학교 경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사립학교로서의 정체된 인사에 활기를 불어넣어 교직원들의 침체된 사기를 높일 뿐 아니라 국고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경기도 교육위원회에 삼일실업고등학교를 삼일공업고등학교와 삼일상업고등학교로 분리 인가 신청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위원회의 검토과정에서 교육시설 부족이란 이유로 분리 인가에 난색을 표명했다. 법인측은 1차 년도에 공고 부족 교실은 상고 교실 4개를 빌려 사용하고, 실습실은 연차적으로 확보하며, 기존 운동장은 공고 체육장으로 하고, 상고 운동장은 삼일중학교 뒷편에 있는 동산을 깎아 만드는 조건으로 1988년도에 공업고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로 분리 인가를 받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법인에서는 삼일상고에 서장석 교장을 임명하고, 삼일공고 초대 교장에는 김기억 교감을 임명하여 삼일공고가 순수 공업고등학교로 발전할 수 있는 대전환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당시 학과와 학급수는 화공과, 기계과, 전기과 총 18학급이었다. 초대 김기억 교장은 상고 서장석교장의 퇴임으로 임명받은 지 2개월만에 상고 교장으로 전보 발령되고, 공고 2대 교장으로 삼일중학교 김상열 교감이 승진 임명되었다. 1992년도에 3대 교장으로 김영상장로가 임명되었으며 1997년 김영상 교장의 임기만료에 따라 리강인 교감이 교장으로 승진 임명되었다.



삼일공업고등학교 기본 통계자료



가. 기관장 및 관리자



학년도        교장

1988         김기억

1989~93    김상열

1994~98    김영상

1999~       리강인





1969년도 당시 삼일실업고등학교의 공업교육시설로는 교실 1개, 허술한 실습실 1개로 어렵게 시작되었으나 1973년 서독의 원조로 당시 완성 학급인 18학급에 맞는 최신 교육시설을 갖춤으로써 1차 발전의 기회를 가진 후, 매년 조금씩 교육시설을 확보하다가 1997년부터 본격적 확충사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997년에 건축비만 연간 약 14억에 이르는 금액을 경기도 교육청으로부터 국고 지원금을 받고 법인으로부터 1천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교육시설을 확충하기 시작하여 1998년에는 국고보조금 4억 6천 만원과 법인 지원금 2천2백9십만원, 1999년에 국고보조금 3억 9천만원으로 전반적인 시설 확충 공사를 하여 공고가 분리된 1988년에 비하여 교실 18개, 관리실 16개, 특별교실 7개, 실습실 18개가 더 늘어나 교육시설을 공립공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앞으로도 우수한 교육 시설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교지확보는 지역적으로 문제가 많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으나 1995년 특별교실 및 테니스부 합숙소 부지 60평(3천만원)을 법인에서 구입하였다.  1999년 현재는 주간정규학급이 화공과, 기계과, 전기과, 전자과 36학급이고, 야간 산업체 특별학급 3학급 총 39학급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2000년도에는 21세기에 대비한 첨단학과인 멀티미디어과와 환경공업과의 학급 인가와 함께 전학과 남녀공학으로 편성되어 앞으로는 더욱 내실 있는 학교로 발전하게 될 전망이다.    



교직원들은 매일 아침 찬송과 기도로 일과를 시작하며, 매주 수요 아침에는 1시간씩 정기예배를 드린다. 간부 교직원은 집사 이상으로 임명하고 있다. 학생들은 매주 1시간 정규수업시간에 성경공부를 하고 있으며, 주 1회 학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절기예배, 신앙강연회는 물론, 전국에서 최초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 목회자들이 학교를 찾아와 1학급씩 담당하여 선교 활동을 하는 ‘학급선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3학년 때는 졸업을 앞두고 모든 학생들이 세례를 받고 졸업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졸업한 졸업생 중에는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와 선교사도 다수 배출되었다.



삼일공업고등시설현황(1988~1999)

(생략)







협성대학교



1. 학교발전사



(1) 협성대학의 창학배경

협성대학교는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스크랜톤(Scranton)과 그의 어머니가 1888년에 세운 기독교대한감리회 상동교회가 이룩한 교육사업의 결실이다. 상동교회가 19세기말 이후 이룩한 교육사업은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한 민족 애국운동과 독립정신을 깨우치는 공옥여학교, 공옥학교, 상동청년학원의 설립, 운영을 통한 국민계몽 및 근대적 지식문명 교육이었다. 협성대학교는 한국 복음화와 민족교육을 이끌어온 상동교회 100년의 위대한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난 것이며 그 계승을 능력 있는 목회자 양성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1970년대 선교 100주년을 기해 감리교 교단이 벌이고 있는 운동과 관심의 내용은 5000교회 100만신도 운동이었고, 이것은 상동교회의 역사적 맥락 속에 흐르는 선교적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한 교육사업과도 일맥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선 시급히 요청되는 교역자 및 지도자 양성이 그 시대의 시급한 당면과제였으며, 상동교회는 이러한 감리교인의 집약된 관심사에 뜻을 같이하고 목회에 몸바칠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교를 설립해 보자는 강한 결의를 갖게 되었고, 마침내 학교 설립의 의지를 굳혔다.

1977년 2월 12일 상동교회 신학교 분과 위원회에서 본격적인 토의를 거쳐 교단과 유관기관이 협의하여 교역자와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로 확정, 학생모집을 하게 된 것이 오늘날 협성대학교의 시효인 것이다.



협성대학교는 미래 사회를 열어갈 전문지식, 지성과 창의성을 갖춘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믿음&#8228;사랑&#8228;봉사를 실천하여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① 21세기를 선도할 능력있는 협성인 양성

② 복음적 선교사명이 투철한 전문 교역자 양성

③ 실천하는 신앙인, 봉사하는 지도자, 능력있는 전문인 양성



이러한 3가지 구체적인 교육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2) 주요 연혁

협성대학교는 기독교대한 감리회 총리원 이사회 실행부가 1977년 감리교서울신학교 설립을 결의함으로써 상동교회를 학교 건물로 사용하여 1977년 4월 1일 ‘감리교서울신학교’로 개교하였다. 1982년 3월 문교부의 신학교 정비방침에 의거하여 5개연회 신학교는 물론 감리교 서울신학교도 폐교 직전에 놓이게 되었으나,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연회별로 설치되어 있던 6개의 신학교를 ‘감리교서울신학교’로 통합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1983년 3월 4일 문교부의 승인을 얻어 경기도 남양주군 입석에 부지 5만평에 교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이어 1985년 1월 8일에는 4년제 대학 학력인정교로 지정되고, 1988년 12월 31일에는 교사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함과 동시에 문교부로부터 3개학과(해외선교학과, 교회음악과, 사회복지과)를 증설하였다. 1991년 11월 15일에는 ‘협성신학대학’으로 개편인가를 받고, 1993년 2월 22일에는 ‘협성신학대학교’로, 1994년 9월 1일에는 ‘협성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3개 대학원, 6개 학부, 13개 전공, 9개 학과에 3,456명(학부 재학생)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과정 속에서 협성대학교는 1992년 학생회관, 1993년 신학관, 1996년 미술학과 실습관, 1997년 본관 및 제1교육관, 1998년 디자인학부 실습관, 1999년 생활관 신축 및 학술정보관 증축, 예술관 착공 등 교육시설 확충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투자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7년에는 교내 전산망을 구축하고 1999년에는 행정전산화를 완성하는 등 소프트웨어(software) 환경 정비에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신입생 선발에 있어서는 1996년부터 다른 대학에 앞서 학과별 특성을 감안하여 학생들이 모두 1~2개의 교과목을 성적을 선택하여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어학과 전산능력을 강조하는 교양과목의 개설, 학부제 도입에 따른 전공선택 폭의 확대 및 최소전공인정학점제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입학에서 졸업까지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의 입장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의 운영은 본 대학교의 특색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실용적 지식과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는 학과를 개설함으로써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의 양성에 기여하고 있으며, 평생교육원 및 중등교원연수원, 수원노인복지회관, 그리고 동양 최초로 ‘성서고고학박물관’을 개관하여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사회봉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협성대학교는 아직까지 완성된 체계를 가졌다기보다는 여전히 양적, 질적 성장을 위하여 준비하는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협성대학교는 앞으로도 장&#8228;단기대학발전계획에 의거하여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서 교육의 질적 수월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 교직원 현황 및 재학생 현황



  (1) 교직원 현황

1998년 전임 교원은 22명, 교직원은 15명, 총 37명이 협성대학교가 확보한 전임 교직원 수였다. 그러나 1999년 4월 현재 협성대학교의 전임 교원의 수는 총장 1명, 부교수 13명, 조교수 52명, 전임강사 27명, 교목 3명 등 총 99명이다. 이 중 외국인 교수는 영어영문학과 및 교양학과에 각 1명 씩 2명이다.



1999년 4월 현재

구  분

총  장         1

교 수          3

부교수       13

조교수       52

전임강사    27

교  목         3

직  원        76

합 계       175



(2) 재학생 현황

협성대학교는 1977년 108명의 학생으로 개교한 이후 재학생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1996년부터 2,020명이던 학생수가 1997년에는 2,670명, 1998년에는 3,400명, 1999년 현재 3개 대학원과 6개 학부, 13개 전공, 9개 학과 3,456명의 규모로 성장하였다.

(생략)



4. 시설.설비 현황



1988년도 협성대학교가 확보한 교지는 30,399㎡로 건물은 제2교육관 9,032㎡ 였었다. 1999년 4월 1일 현재 협성대학교가 확보하고 있는 교지의 총 면적은 122,288㎡이다.

(생략)



7. 기업

(생략~)





8. 역사편찬 사업



&#43092;상동교회 백년사&#43093;는 1988년 10월 9일자로 발간되었다. 총 403쪽에 달하는 이 책의 발행인은 이동학 담임목사, 편집위원장은 김영상 장로, 집필자는 송길섭 교수와 한국명 장로가 맡았다. 이는 단지 일개 개교회의 역사를 기록한다기보다 한국 감리교의 역사를 쓴다는 사명감으로 이루어진 대작이었다. 이 책의 출판으로 상동교회의 1백년 역사가 집대성되었고 한국 감리교회 역사에 관한 하나의 교과서가 탄생한 셈이다. 그러나 물론 완성은 아니다. 상동교회 역사편찬위원회는 그 후에도 역사자료 발굴에 힘쓰면서 이를 획득, 정리, 발표하는 일을 해왔다.

1991년 7월 27일, 이 준 열사 순국 84주기 추모예배가 네델란드 헤이그의 크로스트커크(Kloosterkerk)교회에서 있었다. 본 교회 이동학 담임목사, 서성옥 장로, 한국명 장로, 정남규 장로를 비롯하여 23명이 여기에 참석했고, 현지 교민 이규황 장로와 3백 여명이 동석하여 추모예배를 드렸다. 다시 1995년 8월 5일에는 네델란드 헤이그에 이 준 열사 기념관(Yi Jun Peace Museum) 개관식이 있었는데, 이 때에도 본 교회 담임목사와 30여명이 초청되어 참가했다. 이 기념관은 1907년 7월 당시 이 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이 유숙했고 거기서 이 준 열사가 순국한 건물이라 하여 헤이그시로부터 매입, 기념관으로 개관하게 된 것이다. 우리 역사편찬위원회가 앞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 중 몇 가지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상동교회 박물관위원회와의 연계 활동

(2) 역사자료의 전산 데이터베이스화

(3) 미국 감리회 연회지(Annual Report, Minute 등)에 기록된 1885~1895 기간 중 한국감리교회 각 개교

     회 개척기록 확인

(4) 스크랜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