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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장- 부록 (상동111년사)(341~372)
작성자 상동교회 작성일 06-01-27 00:00 조회 5,660
1. 남선교회

우리 교회를 젊은이 운동의 요람지라고 부르고 있다. 독립운동의 요람지란 말도 있으나 모든 운동이 신앙을 중심으로 나라 사랑의 정신을 젊은이에게 가르쳤거나 이것을 고맙게 여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와서 믿음도 향상되고 아울러 나라사랑의 모임에 참석하는 일들이 많아져서 이와 같은 명예스러운 별명과 대명사가 붙은 것이다. 어쨌든 우리 교회는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교회이다. 지금도 교회지도자들은 젊은이 예배시간을 따로 정해 놓고 젊은이들을 교회로 모으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다.

1984년까지는 40세 이상의 남선교회는 하나 뿐이었으나 1984년 1월 15일 남선교회 총회에서 55세 이상의 남자 신도들을 베드로 선교회, 40세 이상 54세까지를 요한 선교회로 분리하였다.



1981년 남선교회(통합 선교회)임원     회장:서장석   부회장:허동현

1982년 남선교회(통합 선교회)임원     회장:서성옥   부회장:한국명





(1) 베드로 선교회

1985년까지 활동한 베드로 선교회의 초대 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회  장:        박기복 장로 

부회장:        윤  달 장로 

총  무:        이용직 권사 

서  기:        김경환 권사 

회  계:        홍찬기 권사 

감  사:        김세진 집사

신앙전도부장:        최명기 장로 

해외선교부장:        허동현 권사 

문화연구부장:        김원경 집사 

사회봉사부장:        이원오 권사 

친목사교부장:        김성환 집사   

후생부장:        홍순련 권사 

청소년지도부장:이유근 권사 

상조부장:        이덕호 권사



제2대 임원(1986년)

회장:        박광희 장로 

부회장:        허동현 권사 

총무:        김경환 권사 

회계:        홍찬기 권사 

서기:        이원오 권사 

감사:        김세진 집사

신앙전도부장:        한면호 권사 

문화연구부장:        김완수 권사 

사회봉사부장:        서의종 집사 

친목사교부장:        김성환 집사 

청소년지도부장:한백우 권사 

후생부장:        박길호 집사 



1988년 1월에 일부 임원을 새로이 보강, 개편하였다.

서기:        김병화 

감사:        이원오 권사, 김세진 집사 

문화연구부장:조희찬 권사 

친목사교부장:홍순련 권사 

후생부장:        박길호, 심장섭 권사



베드로 선교회의 중요 활동 사항은 먼저 사랑방 교실의 신설이다. 사랑방 교실을 두고 매월 둘째 수요일 오후 4시 30분부터 교회 여선교회실에서 대화의 모임을 가진다. 이 때 베드로 선교회가 가지는 프로그램은 강의 시간, 신앙 간증, 성경공부(강사:박기복 장로)등이다. 1986년 12월 8일부터 교회 결의에 따라 베드로 선교회 회원의 자격을 60세 이상으로 늘렸다. 이밖에 베드로 선교회에서는 병환으로 신음하는 교우들의 가정과 치료받는 교우를 심방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베드로 선교회 회원수는 40명이며 매달 생일을 맞는 회원에게 기념품을 선물하는 일도 빼놓지 않고 있다.



(2) 요한 선교회

베드로 선교회와 갈라진 요한 선교회는 1986년부터 50~59세까지를 정회원으로 삼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 교회의 핵심 남선교회 활동체이다.  회원은 62명(88년)에 이르고 있다. 요한 선교회는 창립된 때부터 오늘까지 3대에 걸쳐 임성택 장로가 회장으로 있어 지도부의 변동이 없는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부회장에는 류은옥 장로, 이태호 장로, 안덕영 권사, 인규진 권사가 차례로 수고 했으며, 88년에는 인규진 권사가 총무로 계속 수고하고 있는 등 이들이 중요한 포스트에서 이끌고 있는 일꾼들이다. 그 밖의 임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  기:        이두형 권사 

회  계         이윤상 권사 

신앙 부장:        이유근 권사 

선교 부장:        유태용 집사  

문화연구부장:        이균형 권사 

사회봉사부장:        손기식 권사 

친목사교부장:        이용안 집사 

청소년지도부장:변창남 권사 

행사부장:        이영환 권사, 이영태 권사 

감  사:        최갑봉 집사, 최현교 집사



고문으로 담임목사와 선교목사를 추대하였고, 합동 선교회 시절에 회장과 부회장으로 있던 서성옥 장로, 한국명 장로 등을 비롯 선교회 소속장로들을 모두 지도위원으로 추대하여 활동에 참여케 하고 있다. 

오늘까지 요한 선교회에서는 강원도 영월에 있는 청광 교회의 조언정 전도사에게 연 36만원씩을 계속해서 보조하고 있고, 불우이웃돕기 사업으로 지난 3년 동안 교회 내외의 여섯 분을 선정해서 총 93만 9천원을 도와주었다.  요한 선교회는 특히 농촌 교회를 방문해서 돕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86년도에는 제암리교회, 봉담교회, 곤지암 명암교회에게, 87년도에는 문산 상동 교회, 영월 천광교회, 병점교회 등을 방문 보조하였다. 

한 해 한 번씩 드린 헌신예배는 계획부터 착실하게 세워 진행하고 있는데 강사진을 보면, 86년에 박동진 장로(인간문화재), 안병욱 교수, 87년에 전택부 장로(전 YMCA총무), 88년에는 역사적인 88올림픽을 감안해서 박세직 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을 초청했다. 

또 요한 선교회에서는 만남의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세대간의 단절이나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어, 우선 교회 내에서라도 이것을 해소하고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청년․대학부와의 대화의 시간을 장장 3시간에 걸쳐 가졌고, 베드로 선교회와도 교회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문제 등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가졌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요한 선교회에서는 경로 행사도 갖고 있는데 형님인 베드로 선교회와 누님벌이 되는 백합 선교회 회원들을 모시는 행사를 매년 1회씩 갖고 있으며, 경조사업으로는 교우들의 결혼 축하, 문병, 문상을 86년에 10건, 87년에 25건, 그리고 88년에도 계속 추진 중이며 회원 배가 운동과 상부 상조에도 힘을 집중시키고 있다.

회원들의 친목행사로 신사임당 유적지, 천진암 성지, 철원 고석정, 강화도 등지에서 회원 친목 야유회를 가졌으며 연말에는 척사대회 및 망년회를 갖고 있다. 또한 요한 선교회에서는 회원들의 신앙 향상을 위해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추진 중에 있는데, 88년의 표어를 ‘신앙과 전도의 생활화’ 라고 정하고 모든 회원이 성경 읽기표를 작성해서 매일 성경을 읽어나가는 운동을 펴고 있으며 다 읽은 회원에게는 시상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요한 선교회에서는 또 연 4회의 특별 가정기도회를 갖고 있다. 매월 첫주일 새벽 기도회를 끝내고 정기 임원회를 열고 있는데 한 두 시간씩 주제를 정하고 주제 토론도 아울러 열고 있다. 토론 주제들은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성경귀절, 기도, 전도, 감사, 성경말씀, 소망, 교회, 사랑 등인데 이러한 신앙주제 토론회를 통하여 신앙이 돈독해짐을 모든 회원들이 체험하고 있다.



(3) 야고보 선교회



야고보 선교회원도 해마다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특히 젊은 층의 교인들이 늘고 있는 현상은 우리 교회의 자랑이라 하겠다. 최근 들어 남선교회 회원이 늘고 있어 1986년부터 교회에서는 만 40세에서 49세까지 소위 40대 선교회 회원들을 요한 선교회에서 분리해서 새롭게 조직하였다. 즉 남선교회를 조직한지 불과 6, 7년만에 3개 선교회로 분리시킨 것이다. 60세 이상이 베드로, 50대가 요한, 40대가 야고보 선교회가 된 것이다. 

활동사항은 모든 선교회가 공히 비슷한 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특히 야고보 선교회원들은 힘을 합쳐 장학 사업을 계속하고 있고 노방전도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야고보 선교회는 경조사에 온 회원이 모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생일을 당한 회원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있는 것은 타 선교회에서 볼 수 없는 회원 서로 간의 친목을 돈독히 하는 것이라 하겠다. 

요한 선교회처럼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교회 70세 이상 어른들을 대접하고 선물도 드리며 위로하고 살아온 경륜을 듣기도 하며, 올바른 신앙 생활에 대해서 배우기도 한다. 야고보 선교회의 특이한 사업으로는 심방예배를 들 수 있다.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심방과는 별도로 회원들 상호간의 형편을 살펴 합심해서 기도하기 위한 이 심방예배는 지도 목사와 자문위원들이 인도해 주고 있는데 회원들간의 결속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야고보 선교회 역대 임원

1986~87년도 임원(1, 2대 임원) 

지도목사:        이동학 목사 

자문위원:        서장석 장로, 서성옥 장로, 박기복 장로, 윤달 장로, 임광원 장로

회  장:        정남규 장로 

부회장:        박희웅 권사

총  무:      임덕순 권사 

서  기:        장동일 집사 

회  계:        신승균 집사 

감  사:        박종원 권사, 서성환 권사 

신앙전도부장:김희만 집사  

해외선교부장:배석재 집사  

문화연구부장:황인성 집사  

사회봉사부장:하상천 집사  

친목사교부장:김정완 집사  

후생상조부장:김정부 집사  

청년지도부장:임광진 권사

  

1988년 임원(3대 임원) 

지도 목사:        김광식 목사, 이건명 목사 

자문위원:                박세용 장로, 정남규 장로 

지도위원:                박종원 권사, 배석재 권사 

회  장:                박희웅 권사 

부회장:                임덕순 권사 

총  무:                 하상천 집사 

부총무:                박재근 집사 

서  기:                박만서 집사 

부서기:                신규철 선생 

회  계:                조영돈 집사 

부회계:                송달석 선생 

감   사:                서성환 권사, 임완순 권사 

신앙전도부장:        김희만 집사 

신앙전도차장:        정형철 집사 

해외선교부장:        임영일 집사 

해외선교차장:        김봉조 선생 

문화연구부장:        김종하 집사 

문화연구차장:        김현준 선생 

사회봉사부장:        신승균 집사 

사회봉사차장:        한윤학 선생

친목사교부장:        최현웅 집사

친목사교부차장:김정완 집사 

후생상조부장:        김정부 집사 

청소년부장:        임광진 권사 

청소년차장:        장동일 집사









2. 여선교회

우리 교회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기관의 하나가 여선교회이다. 그 동안 여선교회는 하나로 성장하여 오다가 1979년 1월부터 두 여선교회로 나누어 50세 이상의 회원은 백합회로, 그리고 50세 이하의 회원은 장미회로 조직했고 1980년부터는 셋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회원 100명이지만 일당백의 힘으로 교회 안팎의 크고 작은 일들을 잘 처리해 나가고 있는 여선교회는 그 부서가 백합회나 장미회나 7부로 조직되어 일하고 있다. 주요 활동을 설명하면,



① 교육부에서는 주로 문서전도, 새 가정을 통한 교육, 독서 운동과 독후감 발표회, 성경통신에의 적극 참여, 장학 운동, 여성 문화 사업 협조 등을 추진하고 있다.

② 전도부에서는 회원 증가 운동, 근로 여성과 병원, 교도소를 위한 특수 선교 신앙강좌 개최, 회원 가정 심방, 기도회 협조 등이다.

③ 사회사업부는 안식관을 위한 회원 모집, 바자회의 개최 등이다.

④ 절제부는 감리교 산하의 불우이웃 돕기, 절제 생활, 폐품 이용, 육해공군 군목 돕기 운동 등이다.

⑤ 생활 지도부는 가정과 이웃간의 고운말 쓰기 운동, 교회 내의 작은 봉사, 기독교 여성의 자세 확립, 식품위생, 가정경제, 절제 생활을 통한 생활개선 등이다.

⑥ 문화부는 회원간 친교, 유고회원 방문 연합회 사업 협조, 지방사업 협조, 합창부의 조직 활동, 그림, 서도, 기타 창작물 전시 등이다.

⑦ 청소년부는 중고등부를 위한 지도자 양성, 지방계삭회 협조, 선교회 주최 헌신예배의 주관, 부활절 활동하기, 봉사활동, 웅변대회, 퀴즈대회, 수련회 등을 통한 청소년들의 신앙 훈련 등이다.

⑧ 미화부에서는 교회와 선교실의 미화 꽃꽂이 강습개최 및 교회전반에 있어서 여성의 손이 닿아야 할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여선교회는 이런 각 부서의 목표달성을 위하여 마르다와 같이 부지런히 움직여 왔다. 1979년 한 해만 하더라도 교육부에서는 이 부서의 목표의 하나인 장학금 사업을 추진하여 매월 계속적으로 학생을 돕고 있다.  금년에는 서울 감리교 신학교 졸업반 학생이며 현직 전도사(경기도 화성군 문천 감리 교회 시무)인 최일권 학생에게 월 2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80년도에는 3만원씩 지불하였다. 그러나 우리 선교회는 남을 섬기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고 회원 자신의 깊이 있는 신앙과 높은 교양을 쌓는데도 노력하고 있다. 즉 이동 도서관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교육부장이 주장하여 책을 구입해서 예배 후 회원들에게 빌려주면서 독서를 권장하였다. 이 때 권장한 도서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① 염려를 극복하는 길(죤 학계 지음, 생명의 말씀사)

② 자기 개선의 7단계(제임스 맬러지, 생명의 말씀사)

③ 기독교적 현실관(O. J. 스미스, 혜성문화사)

④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F. B. 마이어, 혜성문화사)

⑤ 은혜 위에 은혜(찰스 스펄전, 생명의 말씀사)

⑥ 거듭난 자의 생활(에이든 W. 토저, 생명의 말씀사)

⑦ 믿음으로 산 위인들(월터․어드맨, 대한 기독교 서회)

⑧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인(죠이스, 란돌프, 보이스사)

 

특히 1979년 6월에는 일본의 미우라가 쓴 ꡔ길은 여기에ꡕ(번역판)를 읽고 독후감 발표회를 가졌다. 폐병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도 오로지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저자의 감동적인 신앙 간증은 우리 회원 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 교육부는 이렇게 회원들의 교양과 신앙 훈련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전도부에서는 1978년 5월에는 새로나 백화점의 고객들을 상대로 20여 명의 회원들이 주일 예배 후에 전도지를 돌리면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 우리 여선교회의 유니폼(주홍색 한복)에 어깨띠를 두르고 백화점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전도하였다. 또 이전에도 남대문 일대에서 전덕기 목사가 노방전도 하던 대로 상인들과 손님들에게 15명이 동원이 되어 전도지를 배부하면서 전도하기도 하였다. 

6․25를 맞이하여서는 에스더의 전통에 따라 나라를 위한 구국 기도회도 개최하였다. 타의에 의하여 나라가 두동강이가 나고, 게다가 동족끼리의 전쟁까지 치룬 이 땅에 아직도 북으로부터의 침공위협이 여전히 남아 있는 지금의 형편에 안일하게 현 상태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 나라의 참된 평화적인 통일과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없는 평화의 정착을 위하여 철야기도회도 가졌다. 박 목사의 인도 하에 20여 명의 회원이 모여 밤을 새우며 이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의 에스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전도부에서는 지금까지 3년간 계속적으로 인천시 남구 주안 2동 486-2에서 주안 제일감리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한상기 목사에게 월 2만원의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고 1978년도에는 이 교회 건축비로 함모 권사가 회갑 기념으로 50만원을 헌금하였다. 또 지난 5월에는 미국에서 개척 교회를 세우고 있는 이창주 목사에게 찬송가 70권을 우송하여 보내었고, 또한 지난 해에는 결핵 환자들을 수용하고 전도하고 있는 실로암 교회에 두 여선교회가 합하여 8만원의 선교비를 보내어 줌으로써 그 교회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한편 사회 사업부에서는 해마다 성탄절기나 어린이날을 기하여 은퇴 교역자들의 방문이나 불우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 왔다. 1978년의 성탄절기에는 서대문 교도소를 방문하여 150명의 재소자들에게 우리 선교 회원 25명이 합창과 음식대접으로 한 때를 즐겁게 보냈으며 이동학 목사의 설교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리고 1979년의 성탄절기에는 정능에 있는 안식관을 방문하여 평생을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다가 목회의 일선에서 은퇴한 여자 교역자들도 찾아가서 15명에게 금일봉과 과일을 전달하고 그들을 위로하였다. 11월에는 원로목사 40명을 모시고 우리 교회의 버스로 동학사로 위로 여행을 시켜드림으로써 그들에게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하였다. 또 1979년 5월의 어린이날에는 남대문 경찰서 관내에 있는 불우 청소년 300명에게 남대문 경찰서 강당에서 여선교회 회원 26명이 합창과 금일봉으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오래 시무하던 홍순탁 목사의 장남인 홍은표 선생이 설립하고 홍 목사의 손자(홍성후)가 경영하고 있는 오암원(맹인들을 위한 후생 시설)을 위하여 후원금을 모금하고, 또 그들을 위한 접대비도 장만하여 보냈고, 문산에 있는 문산고아원도 방문하여 보조금과 고아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1977년 2월에는 감리교 전국 여선교회 연합회가 회관건물 건립 기금 모금운동을 벌였을 때 우리 교회 여선교회에서도 회원 40명이 모금에 참여하여 81만원을 모금하여 보냈는데, 이 금액 중에는 우리 여선교회 모회원의 20만원의 정성어린 헌금이 포함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우리 여선교회의 활동 상황은 극히 최근의 일이고 그 전에 이룩하여 놓은 업적은 빠져 있다. 앞으로도 우리 여선교회는 일당백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교회 내외의 크고 작은 살림을 계속 꾸려나갈 것이다. 



(1) 백합 여선교회



현재 백합 여선교회 회장은 홍광은 권사이다. 여선교회가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 백합 여선교회의 목적은 회원들의 단합과, 선교와 서로 돕는 봉사에 두고 있으며, 특히 도시 교회의 생활에서 소홀하기 쉬운 합심하여 기도하고 모이기와 힘쓰기에 두고 있다. 

백합 여선교회는 주로 미자립 교회의 재정보조, 교회의 각종 행사 참여에 힘쓰고 있는데 회원수는 75명이며, 출석 회원수도 평균 5~60명이 넘고 있다. 그 중에 60대 회원은 15명 정도이며 거의 70세 이상이어서 일하기에 힘든 일도 없지 않으나 열심히 일에 임하고 있어 일 하는 데는 나이의 구애를 받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88년도 예산을 보면 390만 원으로, 우리 교회 모든 선교회 중에서 으뜸이라고 볼 수 있다. 금년도 백합 선교회의 주요 선교사업은 안양 한마음 교회(김광우 목사) 충남 대학교회(유태섭 전도사) 등 두 교회에 연 60만 원을 보조하여 120만 원을 사용하고 있다. 

84년부터 백합 여선교회에서 발기하여 매월 첫 수요일에 특별 기도회를 실시하고 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기도회에 참여하는 인원이 늘고, 이 뜻을 따르는 선교회가 많아져 남녀 선교회에서 참가하는 열의가 대단해지고 있다. 

그 밖에 백합 여선교회에서는 병원 자원봉사(매월 셋째 화요일), 결핵 입원환자에게 우유값 제공, 또 심방에는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고 그 밖의 교회활동에도 어머니 선교회답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88년도의 특기 사항이라면 백합 여선교회에서는 85세 이상 되신 노모님들에 대한 심방이다. 회원들이 찾아가 따뜻한 위로와 뜨거운 기도를 해드릴 때 노모들의 가족은 물론 노인들 자신이 크게 은혜 받고 이끌어 온 임원은 다음과 같다.



1979년의 초대 임원들이 4년간 백합 여선교회를 이끌었다.

회  장:김영신 권사 

부회장:홍해은 권사 

총  무:홍광은 권사 

회  계:김경숙 권사 

부회계:김영숙 권사 

서  기:임수선 집사 

고  문:홍윤분 전도사, 김기화 사모님, 함정희 권사, 김민옥 권사

 

1983년 제2대 임원

회  장:        홍해은 권사 

부회장:        박상의 권사 

총  무:        김경숙 권사 

회  계:         박인수 권사 

부회계:        이임채 권사 

서  기:        임수선 권사 

부서기:        유인근 권사 

전도부:        장희정 권사, 한부남 권사 

교육부:        이봉임 장로, 최진희 권사 

사회 사업부:홍일표 권사, 오천순 권사 

생활 지도부:김기춘 권사, 백은지 권사 

문화부:        홍광은 권사, 서복련 권사



제3대 임원

회  장:박상의 권사 

부회장:홍광은 권사 

총  무:김기춘 권사 

회  계:박인수 권사 

부회계:황우순 집사 

서  기:한부남 권사 

부서기:이인숙 집사 



제4대 임원 

회  장:홍광은 권사 

부회장:박인수 권사 

총  무:김기춘 권사 

회  계:유인근 권사 

부회계:백은지 권사 

서  기:한부남 권사 

부서기:주한옥 집사



(2) 국화 선교회



국화 선교회가 탄생한 것은 매우 일천하다. 그러니까 1985년 12월 22일 소예배실에서 30여 명이 모여 창립 총회를 가졌다. 50대 이상의 백합 선교회와 40대 이하 장미 선교회의 회원이 증대함에 따라 부득이 발전적 분할을 하게 되어 탄생된 것이다. 

50대(50세에서 만 59세 까지)의 모든 여성 성도들을 대상으로 모인 선교회인데, 해마다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회원(1987년 4명 1988년 8명 등)과 자동적으로 감소되는 회원(60세가 되어 백합으로 옮기는 회원 1987년 3명, 1988년 2명)을 가감해서 현재 48명의 회원으로 늘어났다. 

어느 교회든지 여선교회 회원들의 봉사활동이 활발하지만, 우리교회 모든 여선교회 활동은 참으로 눈부시다. 회원들의 열성적인 봉사 활동의 원천은 그 사업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도회를 자주하여 힘의 축척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새벽 기도회는 물론 삼일 기도회, 기도원 기도회 등 각종 기도회를 모든 여선교회에서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화 선교회의 그 동안 봉사활동과 사업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회원 상호간의 경, 조시 방문 및 봉사

2. 회원 및 회원 가족 병문안

3. 교회 내외의 각종 행사 봉사 

4. 충북 영동 봉림교회 2년간 보조 

5. 충북 옥천 감리교회 매월 보조(현재) 

6. 아프리카 케냐 선교기금 모금 전달 

7. 기독교 방송 운영기금 헌금 

8. 신망애 재활원 매년 방문 및 보조 

9. 국립의료원 자원봉사 및 극빈 입원환자 우유제공

10. 용산 경찰서 구치소 방문 

11. 재소자 양말 떠서 보내기(매년) 

12. 작은돈 모으기 운동 

13. 청소년 선교 각종 행사 참여 보조 

14. 회원 친교를 위한 야외 기도회(연 2회) 

15. 두 달에 한 번씩 자체 기도회 및 연수회 

16. 전국 연합회 주최 각부 세미나에 참석 

17. 지방 주최 모든 회의에 참석 

18. 교회 임원회 식사 봉사(연 3회)



(3) 장미 여선교회



장미 여선교회는 나이로 따지면 셋째 언니들의 모임이겠으나 역사로 보면 제일 오랜 백합과 같다고 하겠다. 그것은 애초에 하나인 여선교회가 둘로 갈라질 때 장미, 백합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어머니 선교회와 같다고 하겠다. 물론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것은 백합이라 하지만 갈라지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활동도 장미 여선교회는 무척 짜임새 있고 계획적이며 또 전통적이라 하겠다. 

장미 여선교회에서는 해마다 개척교회를 돕고 있는데, 84년에는 장계 감리교회, 85년 제천 오미 감리교회, 86년 공주의 연고․백고 감리교회를 보조 했고 87년 영월 청광감리교회를, 그리고 88년 금년에는 의정부 염광 감리교회를 보조하고 있다. 또한 여자 교역자 방순자 목사와 노명숙 목사 등이 시무하는 교회와 또는 목사님의 목회를 위해서도 보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회원들의 영적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매월 둘째 수요일에 성경공부를 1985년에 시작했고, 개인의 신앙 향상을 위한 기도원의 기도 생활을 해마다 4회에 걸쳐 실시하고 있다. 

1986년에는 장미 여선교회원들이 뜻을 모아 구치소에서 고생하는 원생들에게 지식과 영의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수백 권의 책을 모아 서대문 구치소를 직접 방문하고 전달한 바도 있다. 

그리고 해마다 전체 여선교회와 합심해서 안식관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일생 동안 교회에 바쳐 헌신한 여교역자들을 따뜻이 돌보는 일에 앞장서는 일도 하나의 연례 행사로서가 아니라, 의무요 당연히 해야 하는 자식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회원들의 정서함양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책을 읽고 독후감 발표나 성곡 감상회를 해마다 열고 있으며, 또 백합 선교회와 함께 전국 여선교회 연합회도 돕고 있으며 상회에 나가 활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특히 87년에는 여성회관에 비디오를 설치하는데 크게 보탬을 주기도 하였다. 81년부터 장미 여선교회를 이끌어 온 주요 임원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81년 회장:        서순애 권사  부회장:박선덕       총무:정호선 

82년 회장:        김용애 권사  부회장:이신순 

83년 회장:        김용애 권사  부회장:이신순 권사 

84년 회장:        이신순 권사  부회장:정준경 권사  총무:김현아 집사 

85년 회장:        박선덕 권사  부회장:전준경 권사  총무:김현아 집사 

86년 회장:        박선덕 권사  부회장:김현아 집사  총무:서명희 권사 

87년 회장:        서명희 권사  부회장:김영자 집사  총무:김국자 집사 



그리고 88년도 장미 여선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임원진은 다음과 같다.



회장:        서명희 권사 

부회장:        김현아 집사 

총무:        김영자 집사 

서기:        문병애 집사 

회계:        이진자 집사 

선교부장:        심부경 집사          차장:최윤실 집사 

교육부장:        김국자 집사         차장:김경자 집사 

문화부장:        정호선 권사         차장:조영자 집사

음악부장:        김용애 권사         차장:임정림 집사

사회사업부장:이상희 집사         차장:송순옥

생활지도부장:정정자 집사         차장:서호숙

청소년부장:        윤정자 집사         차장:이재경 집사

미화부장:        차정숙 집사         차장:조정자 집사



(4) 목련 여선교회



30대 여선교회로서, 이들은 상동교회 여선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잠재력을 듬뿍 갖고 있는 여선교회이다. 이제 30대, 대부분이 아이들을 낳았으나 막 초등학교에 입학시켰거나 유치원 등에 보낼 나이의 어린이를 양육하는 젊은 어머니들이다. 그래서 시간을 내기가 무척 힘든 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190여만 원이란 큰 돈을 87년에 수입하였고, 180여만 원을 봉사한 알찬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1987년)의 예를 보면 이천에서 개척교회로 애쓰는 전도사를 매월 보조하여, 자신들이 파송하여 현장에 뛰어들진 못하지만 헌금으로 돕고 있으며, 신학생을 한 명 선발하여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 목련 여선교회에서는 국립의료원 병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 특색인데, 자원봉사자라는 정평이 날 정도로 열심히 매달 봉사에 임하고 있다.

언니 여선교회에서 서대문 구치소 등을 방문하여 전도할 때 동생인 목련여선교회에서는 남대문 경찰서 유치장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전도하는 용기도 갖고 있으며, 선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목련회도 자신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임원 기도회, 회원합심 기도회, 목련 기도회 등 매월 기도회를 갖고 있으며 서로 성경을 읽도록 자극을 주는 운동을 펴고 있다. 그래서 목련회원이 주축이 되어서 주일 아침 청장년 성경공부에 전원 출석을 목표로 모임을 갖고 있다. 목련회를 이끌어 온 임원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81년 회장:김지신 집사

82년 회장:김지신 집사

83년 회장:임정임 집사

84년 회장:최현방 집사

85년 회장:최현방        부회장:윤영숙   총무:김정자

86년 회장:김금옥        부회장:윤영숙   총무:김순겸

87년 회장:윤영숙        부회장:김순겸   총무:최혜진



   88년도 임원

고 문:           강연태 전도사

회 장:           김금옥 집사

부회장:          최현영 집사

총 무:           최혜진 집사

회 계:           윤인수 집사

서 기:           김기주 집사   부서기:박주리

감 사:           이진선(김광식 목사 부인), 윤영숙 집사

선교부장:        장순희 집사   차장:박봉순 집사

교육부장:        이영숙 집사   차장:최정심 집사

사회사업부장:        계봉녀 집사   차장:조한옥 집사

       연구부장:     강운숙        차장:조한독 집사

청소넌지도부장:백선자 집사   차장:이영순

문화부장:        배화영 집사   차장:윤인선



(5) 개나리 여선교회



개나리 여선교회는 애초에 매화 여선교회로 했다가 이름을 바꾸어 개나리가 되었다. 개나리는 서울시 꽃이름이며 그 아름답고 우아함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봄에 제일 먼저 피어나는 꽃으로도 우리 나라에선 개나리를 따를 꽃은 없을 것이다.

그 이름 그대로 개나리 여선교회는 20에서 30세까지의 젊은 여성들의 모임인데 청년회와 구분되는 것은 개나리 여선교회 회원은 결혼한 여성이어야 하는 가장 막내 여선교회이다. 그래서 개나리 여선교회는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처녀들을 결혼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나 대부분의 여성 청년들이 결혼하면 타지방이나 또 외국으로 시집을 가버려 안타깝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아직은 생활기반도 약하고 어린이가 딸려 있는 형편이어서 크게 교회 활동은 못하나 10명의 회원은 단결해서 매주 기도회를 갖고 있다. 이것은 큰 힘이 되는 것이다. 기도 없이 일을 시작하면 낭패하거나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온 우리 교회이다. 이렇게 선교회에서 기도로 돕고 있어 교회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큼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개나리 여선교회는 비록 10명의 회원이지만 케냐에 가 있는 김정한 선교사에게 보조금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누구나 맡아서 봉사하길 꺼려하는 영아부를 맡아 봉사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주일 낮 예배를 차분하고 조용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들의 숨은 봉사 때문인 것이다.

또한 이들 개나리 여선교회에서는 물질적으로 봉사하기 힘든 것, 즉 교회 근처에 다니며 전도하는 일에 매주일 앞장서고 있다. 회원 댁에 대한 심방도 빼놓지 않고 있으며, 교회 행사에서 비록 작은 돈이지만 언니, 어머니 선교회와 같이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개나리 여선교회는 앞으로 무한히 뻗어나갈 가능성이 있는 선교회이다. 지금 우리 교회 청년회, 청장년회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어 이것과 정비례하여 발전할 것이라 믿어진다. 86년부터 시작한 개나리 여선교회 회원은 현재 10명이며 이 선교회를 이끌어 온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    장:        박종원

부회장 및 총무:1대 고영임, 2대 이종선

서    기:        양필순

회    계:        1대 양필순, 2대 고영임

교육부장:        1대 김명숙, 2대 김명순

선교부장:        최지현(88년 신설)













3. 엡웟 청년회

상동교회 엡웟 청년회는 1897년 9월 5일에 창설되었고 창립시 회원은 44명이었다. 엡웟 청년회는 곧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1997년은 감리교청년회의 창설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초기의 우리 교회 청년회는 민족운동의 요람지로 불리울 만큼 구국운동을 적극 주도했는데, 그 때문에 결국 엡웟 청년회가 1906년에 해체 당하게 되었다.

상동교회 엡웟 청년회의 설립당시 회칙을 보면, 회원의 자격은 ①교인이어야 하고, ②나이는 15~35세로 한정되어 당시에는 30대 초반도 청년회에서 활동했던 것이다. 청년회에는 회장, 부회장, 서기 등 6개월 임기의 임원들과 임원국(협의), 전도국(선교), 인제국(봉사), 학문국(교육), 다정국(친교), 통신국(서기), 회계국(재정)의 7개 부서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상동 엡웟 청년회의 역대 임원 명단은 자세하지 않다. 1897년 창립시의 회장은 이은승(李殷承) 전도사였다. 그는 동년 5월에 결성된 전국 중앙조직인 대한중앙청년회의 6인 창설멤버로서 선교사 존스(G. H. Jones, 趙元時), 노블(W. A. Noble, 魯普乙), 페인(J. O. Paine, 陛仁), 김기범(제물포교회 전도사), 노병선(배재학당 교관)들과 함께 엡웟청년회 전국조직을 만드는 산파역을 하였다. ꡔ죠션크리스도인회보ꡕ, 1897. 9. 15.



1902년도 회장은 김의식, 1903년 이후 수년간은 전덕기가 회장이었다. 전덕기 회장이 주도하는 상동 청년회는 1904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으며 1904. 10. 15일, 상동청년학원(초대교장:이승만)개교식 행사를 거행했다. 이미 제1편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상동청년학원은 엡웟의 공식적인 활동무대였다. 그러나 전덕기 목사의 소천과 함께 상동 엡웟 청년회는 사실상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이다.

엡웟 청년회는 1916년에 재건되었고 1920년대의 엡웟 청년회 회원수는 전국적으로 3~4천명 가량이었다. ꡔ기독교 미감리회조선연회록ꡕ, 1919, p.75.

이 기간 중 어느 해인지는 모르나 우리 교회 엡웟 청년회의 임원 명단이 아래와 같이 알려져 있다. 회장, 부회장 등이 각각 2명씩인 것을 보면 최소 2년 이상을 담당했던 임원들이었다고 짐작된다. 이들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임원들이 활동했으나 다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ꡔ한국 감리교청년회 100년사ꡕ, 감리교청년회 100주년 기념사업회, 1997, p.110~111.



 

회장:전채선, 최상현   부회장:김익중, 김원영   총무:이홍종

서기:이재묵, 이기순   회계:박광남, 안태?

전도부:서창진, 장명덕

구제부:원견신

문학부:이기연, 홍은표

사교부:강을영, 정일용

기타임원:안신영, 김환식, 이정은, 김윤환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나라 엡웟 청년회는 물론 개교회를 위해 헌신했으나 보다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은 구국운동, 교육계몽 활동, 사회봉사 활동의 전국규모 추진이었다. 남궁억이 작사한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농촌봉사 정신을 불러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65378;상록수&#65379;의 여주인공이며 실제 인물인 최용신(崔容信)이 농촌운동에 투신한 1931년 당시 그녀는 감리교신학대학 재학 중이었다. 엡웟 청년회는 일제의 탄압으로 1938년에 다시 해산되었고, 감리교청년회(MYF)가 시작된 것은 1955년이다. 감리교청년회는 1961년 이후 매년 전국연합회 총회를 개최하는데 1971년도에는 우리 상동교회 임완순(현재 권사) 회장이 전국 회장을 맡은 바 있다.

1977년 5월 23~24일 우리 상동교회에서 전국연합회가 주관하는 웨슬리 신앙강좌가 열렸는데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는 강좌주제가 역사 깊은 우리 상동교회의 교인들에게는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 여기 상동교회에 다시 청년운동을 불러 일으켜 주소서! 이 신앙강좌를 마치면서 연합회측은 ‘감리교 청년운동 선언문’을 채택, 발표하였다.

일제의 암흑기에 감리교 청년들이 앞장 섰던 ‘상록수’ 정신은 우리 교회에도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다. 우리 교회 청년회는 1981년부터 매년 하계 농촌봉사대를 파견하고 있다. 처음에는 ‘농촌봉사’라 불렀으나 1987년부터는 선교에 중점을 두어 ‘농촌선교봉사’로 개칭하였다. 보통 4박 5일을 일하는데 지역 교회에서 숙식을 하고 여름성경학교를 담당하는 한편 주민과의 대화, 가가호호 방문, 일손 돕기, 도로 작업, 화장실 청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봉사한다. 교회는 왕복교통과 재료비 정도를 보조하며 식대와 경비는 청년회원들이 회비를 내어 충당한다. 1988년까지의 파견지역은 아래와 같다.

             

1981:충남 대천 서면교회

1982:경기도 김포군 동산교회

1983:강원도 평창군 노산교회

1984:강원도 홍천군 월운교회

1985:충북 중원군 삼청교회

1986:충남 연기군 유천교회

1987:충남 연기군 유천교회

1988:경기도 이천군 평민교회



상동교회 엡웟 청년회는 이원용 목사가 부임하여 활기를 띠게 되었고, 청년부장 이광호 장로, 오일영 전도사(현 능서상동교회 담임목사)의 합작으로 크게 발전하여 80년대 후반에는 출석회원이 70명을 넘게 되었다. 군입대자 등을 포함하면 100명 이상이다. 따라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제1청년회와 고참급 청년들로 구성되는 제2청년회로 나누게 되었다.

엡웟 청년회의 주요 사업은 젊은이 예배, 성경공부, 청년제(매년 10월), 상동 역사 발굴, 농촌선교봉사, 야학 봉사, 수련회, 바자회, 등반대회, 일일찻집, 전덕기 목사 묘소방문예배, 이웃 교회와 친선체육대회, 전국연합회 행사 참가 등 매우 다양하다. 80년대의 임원명단은 아래와 같다.



제1청년회 임원

       연  도

회  장

부 회 장

총 무

1980년

장세환





1981년

조언정

박영미

서영석

1982년

서영석

이경실

구윤모

1983년

구윤모

한시춘

이용연

1984년

이용연

이재선

이상열

1985년

임용택

박현영

민관기

1986년

김명준

허경희

함정기

1987년

임용택

최은주

정인호

1988년

박평연

김옥진

이중열

             

    







제2청년회 임원

연  도

회  장

부 회 장

1980년

강미영

양필순

1981년

장보혁

우애정

1982년

김인섭

서경원

1983년

김인섭

서경원

1984년

오일영

허분희

1985년

이재상

윤선희

1986년

한용호

정명숙

1987년

김동규

김경화

1988년

문준하



























4. 성가대

상동교회의 성가대는 우리 교회의 성쇠와 함께 발전도 되었다가 후퇴도 되었다 했다. 우리 교회의 성가대는 근래에 고 김정웅 권사와 김영상 장로, 한용석 목사(당시 권사), 임성택 장로가 성가대장을 역임하여 우리 교회 성가대를 훌륭하게 키워왔다.

한편 우리 교회의 지휘자로는 당대 음악계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총망라 되었는데, 예를 들면 최영섭 씨, 변성엽 씨, 전석환 씨, 미국으로 이민간 김승순 씨, 고려대 교수인 곽 연 씨 등이 우리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봉을 잡았으며, 오늘날에는 연세대학교 교수인 나인용 장로가 우리 교회 교인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다.

나인용 장로는 학교 일로 미국과 독일 등지에 약 1년씩 교환 교수로 다녀 오게 되는데, 그 때에는 김상태 씨라든가 박인호 씨 등이 대신 지휘를 맡아 훌륭한 성가대로 유지하도록 이끌어 왔다. 특히 박인호 씨는 나인용 장로와 함께 우리 교회 교인으로 남아 장차 지휘봉을 인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 우리 교회 성가대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성가대장 정남규 장로와 지휘자인 나인용 장로가 든든히 다져나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하루같이 성가대 일을 내일같이 보살피는 정남규 장로가 대장 일을 맡고 있고, 부대장에는 김용애 권사가 1979년에 맡아 수고했고, 81년부터는 박선덕 권사가 맡아 어머니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반주에는 피아노 반주, 오르간 반주 또는 1981년부터는 바이올린, 첼로 등의 반주자가 봉사했는데 피아노 반주는 1979년 80년에는 전혜경 씨가, 1981년에서 84년까지는 정경님 씨가 수고했다. 1984년부터 오늘까지 오르간 반주에 이현주 씨가 수고하고 있고, 피아노는 80년부터 박미례 씨가 맡아 수고하고 있다. 그밖에 총무로는 강동삼, 박찬규(2회), 정남진, 장세환, 김창석, 한규환, 최현성(2회), 박영준 씨 등이 맡아 수고했다.

스트링 담당자로는 여은희, 김소회, 하미혜, 장미화, 하은혜, 이옥주, 김애경, 김명희, 이경자, 이주현, 우지춘, 김혜숙, 윤종인, 안은주 씨 등이 열성적으로 봉사했다.

그리고 1986년부터는 1부 예배를 도와 찬양하는 1부 예배 성가대를 조직하여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는데, 지휘자에 유지호(86~87년), 문창제(88년), 88년도 중&#8228;고등부 학생성가대 지휘자는 김영완 씨가 임명되었다.

반주도 1부 예배, 낮 예배, 수요 예배로 나누어 봉사케 했는데, 정유선, 윤선희, 김경자, 김승정, 박상희, 인영아, 황미경 씨 등이 맡아 수고하였거나 지금도 수고하고 있다.



1988년도 성가대 조직표

대 장:        정남규

부대장:        박선덕 박찬규

지휘자:        나인용(2부) 문창제(1부) 김영완(중&#8228;고등)

반주자:        이현주(오르간) 인영아(1부) 황미영(중&#8228;고등)

        박미례(피아노) 박상희(석양예배) 김경자(청년&#8228;대학부)

스트링:        김혜숙, 윤종인, 이주현, 안은주

총 무:        최현성         부총무:곽홍석

회 계:        김현아         서 기:김영웅

부서기:        강미영

신앙부장:        손기식 정주현

음악부장:        장영숙 박성숙

친교부장:        장세완 김승정

피스관리부장:이재근 박태현

가운관리부장:김국자 최원혜

Sop. 파트부장:임정님 

김용배 박성숙 정호선 정영옥 임정님 최문자 최현영 윤정자 장영숙 지규정

김정우 김승정 나경혜 양은경 유주영 유현주 고영임 양현정 노한옥 황민자

박현영 조혜진 김정우 이경희 김은정 안정화(26명)

Alt. 파트부장:최현방 

강신애 김국자 김현아 박상희 박선덕 이재선 정준경 윤영임 최현방 강미영

최원혜 나은혜 안경화 이은하 김영자 최은주 이영란(17명)

Tenor. 파트부장:서성환 

손기식 박희웅 한규환 서성환 장세완 이재근 최현성 김영웅 이성탁 김인철

최재춘 길우송 임용택 백형기(14명)

Bass. 파트부장:김창석

정남규 정쥬현 안덕영 김창석 곽홍석 박태현 최은선 박찬규 이 준규 성민경

김경남 고현준 옥상훈(13명)

합 계:70명



1부성가대 조직표

지휘자:문창제 반주자:인영아

총 무:        박영준 서 기:최정화

회 계:        박성숙(구채주)

Sop. 인금화 이정선 이미자 최정화 전미향 강현미 이민자 정희경 정신자 박성숙         권현숙 이승희 박영희 이미숙 김미자 이숙자 서지현 김현숙 박헌영 김승정                (20명)

Alt. 임창희 이은자 배은정 김미선 서인숙 강미영 박숙희(7명)

Ten. 박영준 구채주 홍재호 박 간(4명)

Bass. 강준희 이성일 이 준규(3명)

합 계:34명



우리 교회에서는 전자오르간이 낡아 1980년 6월에 갈브겐슨전자 오르간을 6,730,000원에 구입 교체했으나, 더 좋은 올갠을 비치하기 위해 돈을 모아오다가 1987년 10월에 알랜 1300 신형 풀페달모델 전자오르간을 2천만 원을 들여 구입, 교체했다. 

금년(88년) 9월 11일에는 본 교회 음악위원회(위원장:임성택 장로)를 소집하여 여선교회 성가대를 조직하기로 하고 박찬규 집사를 1부 예배 부대장으로, 박선덕 권사를 여선교회 성가대 부대장으로 임명하고, 여선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김용애 권사, 반주자는 정준경 권사로 결정하고 9월 18일에 발족했다. 

우리 교회는 성가대의 활동을 위해서 충분한 예산은 못되지만 교회학교와 함께 교회예산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 책정하고 있다. 그것은 성가 활동을 향한 교회의 배려가 높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지난 10년간 예산과 경상비의 내역이다.





연도별